우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도
여자의 슬픔은 줄어들어요
개원 후부터 다니시던 70세가 넘은 부부가 계셨다. 할머니가 오랜만에 오셨다.
“서 선생님은 건강하세요? 지금은 술 좀 줄이셨나요?”
“여전히 술로 사시지요. 너무 오래된 틀니를 다시 하러 왔어요.”
사위가 암 투병을 하고 있다며 그래도 딸은 먹고 살아야하니 직장을 나가야하겠기에 대신 환자를 돌보고 있다고 하신다. 치과에 올 상황은 아니지만 먹을 수가 없게 되자 힘이 없고 어지러워 병간호도 못하겠어서 할 수 없이 왔다고 하신다. 그래서 시간 예약을 할 수도 없고 딸이 일찍 오게 되는 날에 틈이 나는 대로 와야 한다며 편의를 보아 달라고 하신다.
“집안에 그런 큰 일이 있으시군요. 시간 나는 대로 오세요. 환자가 회복될 가능성은 있나요?”
이미 늦은 상태이고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렸다며 기적만 바라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신다.
한달이면 끝날 수 있는 일이 거의 3개월이 넘어서 끝이 났다. 치료가 끝나고 두 달 후쯤 내원하셨다.
“치료 마무리를 해드린다고 했는데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내가 죄가 많나 봐요 원장님, 사위가 먼저 갔어요.”
나를 보더니 원장님 사위가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며 괴로운 눈물을 주르륵 흘리신다. 뭐라고 슬픔을 위로 드릴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건강하게 오늘 하루 동안 아무 일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얼굴을 맞대고 저녁 식탁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사람들은 모르고 지낸다. 모든 만남이, 만날 수 있다는 일상의 작은 모든 것들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말이다. 왜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하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야하는지 이제는 조금씩 깨달아 간다.
“서 선생님도 많이 상심 되셨겠네요? 부부간에 서로 위로하며 기운을 내세요.”
“남편은 그날 이후 술로만 사네요.”
“얼마나 괴로우면 술로 잊으려 하시겠어요.”
“원장님, 나는 더 못살겠어요. 하루 종일 술만 먹으니, 저를 더 괴롭히네요? 내가 정말 죄가 많은 가 봐요.”
너무도 괴로워하신다.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부부는 전생에 빚진 게 있는 걸 풀려고 만난데요. 만일 이번 생에 못 다 풀고 가면 다음 생에 다시 만나서 풀어야한다고 하던데요. 이런 말 들은 적 있으시죠?”
무슨 말인가 귀를 바짝 기울이신다.
“남편에게 전생에 진 술빚이 있었는데 이번 생에 남기고가면 다음 생에 마져 갚아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서 선생님께 전생에 진 술빚을 이번 생에 다 풀고 가실래요. 아니면 남기고 가서 다음 생에 다시 풀래요?”
그동안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리던 표정에서 갑자기 얼굴빛이 환해지며 울다가 웃기 시작하신다.
“아이고 원장님, 이번 생에 다 풀고 갈래요. 끝을 내야지요?”
어떤 작은 깨달음이 찾아 온 듯이 ‘풀고 갈래요’를 되내며, 오래 묶은 체증이 내려간 듯 시원한 표정이다.
“남편을 미워하지 마세요. 전생의 업을 다 풀어 드리려는 겁니다. 오히려 감사하세요.”
이젠 알았다며 이젠 참을 수 있다고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같은 말을 되내이며 가셨다.
그동안 옆 치료대에서 듣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정말 좋은 일 하셨네요.”하신다.
“술로 살아온 남편을 용서할 수 있게 해주셨고 사위 잃은 슬픔을 줄여주셨네요.”
“글쎄요. 사위 잃은 슬픔은 별로 줄여 들이지 못 했는걸요?”
“여자는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우는 것만으로도, 말하는 동안에 슬픔이 줄어드는 거예요.”
박 금 출
·82년 경희치대 졸
·현)박금출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