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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서울시민께 바라는 "역지사지"/박덕영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서울사람들 생각은
왜 이리 바뀌지 않는 걸까


“엥? 또야?”
오늘도 어김없이 회의날짜 일주일 전에 쌩뚱맞은 회의통지가 날아든다. 공문에는 온갖 정중한 서체를 썼지만, 강릉사는 박씨의 눈에는 “이날 회의 있거든? 올려면 오고 말려면 관둬. 뭐 안오면 네가 관심없어 안 오는 거고, 너 없어도 회의는 돌아갈 거야. 회의날짜 알려줬으니 고맙지?”라고 약 올리는 글로 읽힌다.


“피유…” 한숨 한번 쉬고 마음을 다잡는다. “뭐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또 한번 눈앞을 스친다. 지방에 살지 않았으면 해보지 못했을 경험들….
서울에서 열리는 회의는 서울사람들 위주로 날짜와 시간이 잡힌다. 이런 걸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간으로 잡아야겠지. 회의시간은 대개 서울사람 일과 후 저녁시간이다. 서울사람은 일상을 다 보내고 과외로 회의에 참석한다지만, 내가 슈퍼맨이나 순간이동 초능력을 갖지 않은 이상에는 난 오후 일과를 길에 뿌리고 상경해야 한다. 한때는 그 시간을 놓치지 않겠다고 고속버스 안에서 책도 읽어보려 했지만 흔들리는 차 안에서 책을 읽다가 차에서 내려 멀미기운 이겨내느라 허송하는 시간이 더 길다는 사실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 시내가 아무리 막힌다지만, 서울사람이 회의를 위해 교통에 쓰는 시간의 네 배, 교통에 소요되는 비용의 15~20배는 족히 쏟아 부어야 한 자리에 같이 앉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음날 일정을 생각하면 서울에서 숙박을 할 수가 없다. 회의 당일의 막차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 강릉행 막차는 밤 11시반. 보통 7시나 되어야 시작되는 회의가 늦게 끝나거나 뒷풀이라도 있는 날이면 초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천안문사태때 탱크앞을 막아서던 어느 대학생처럼 터미널을 떠나는 막차 앞을 막아서기 몇 번이던가.


막차를 놓치면 새벽 6시 첫 차를 타야 가까스로 강릉에서의 9시 일과를 시작할 수 있다. 희한하게도 서울 고속터미널 근처에는 마땅한 숙소가 없다. 지금은 찜질방이라도 있어서 그나마 낫지만 몇 년전까지는 서너시간 눈붙일만한 곳이 없어서 터미널에서 신문지가 얼마나 따뜻한지를 느끼며 첫차 출발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글을 쓰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 “더 있다 가라”는 일행들의 눈물겨운 사랑에 큰 맘 먹고 막차를 호기롭게 보냈는데, 막상 자정이 되니 “안녕” 한 마디를 남기고 자기 집으로 흩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허탈감과 배신감이여.


노숙자가 된 느낌을 받지 않으려고 언젠가는 자정즈음에 택시를 타고 강릉으로 내려온 적도 있었다. “돈이 문제랴. 품위를 지켜야지!” 하지만 난 강릉으로 내려오는 내내 단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택시 천정근처에 달린 손잡이에 매달려 있었어야 했다. 빨리 달리는 건 이해하겠는데 중앙선을 표시해 놓은 러버콘(당시에는 중앙분리대가 없었다)이 간간이 내 오른쪽에 보이는 데에야 어찌 잠을 잘 수가 있겠는가.


막차를 탄다 하더라도 도착시간은 새벽 2시를 넘어선다. 차 안에서 잠을 청하다가 버스에서 내려서 새벽바람을 쐬면 잠이 싹 달아난다. 그러고는 집에 들어와 달아난 잠을 다시 붙잡으려 온갖 애를 쓰다가 동트기 직전에야 잠이 든 적이 몇 번이던가. 이렇게 잠을 설친 날은 하루 종일 정신이 멀쩡할리 없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 영동고속도로에 중앙분리대도 생기고, 차선도 늘어나고 갓길도 생기고… 1년반 전부터는 주말부부를 하면서 가족은 서울에 있으니 적어도 노숙자의 느낌이 들 일도 면했다.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오가는 데 드는 시간이나 비용은 서울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고, 세상이 바뀌어도 서울사람들의 생각은 10년이 가까워지도록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치과계에 인재가 부족하고 일할 인력이 부족하다면서요? 우리나라 인터넷 강국이라잖아요. 한번 만나서 회의하면 한 두번은 전화회의나 인터넷 이용한 화상회의 좀 하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