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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9)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상)/안형준


여자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는
아들의 모습에 위안을 삼으며


안 형 준
 ·94년 연세치대 졸
·연세치대 교수
·(가칭)대한레이저치의학회 총무이사


어느 날이었다. 아내로부터 유치원 졸업을 앞둔 아들놈이 유치원에서 하는 페스티벌 행사에서 아빠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 하니 시간 좀 내서 같이 해 주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인즉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지역에서는 꽤 크다는 문예회관을 빌려서 모든 학부모들을 모시고 발표회를 한단다. 전체 원생 및 선생님들이 다 참여하여 프로그램도 거의 20개 가까이 되는 큰 행사로, 이 중 유일하게 아이와 아빠가 함께 왈츠를 추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에 참여하라는 얘기다.


물론 전체 학생이 다 하는 것은 아니고 신청을 받아서 희망자 중 일부만 하는 거란다.
행사 날짜가 애매한 평일 저녁시간이고, 무대 체질도 아닌데다 또 왈츠라는 생소한 단어에 당연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곧바로 거절하면 아이가 실망할까봐 바빠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대답을 미룬 채 시간을 끌어왔다.


나의 작전이 적중하여 어느덧 신청마감기간이 지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1차 연습까지 끝냈다는 소식을 들을 즈음, 아이의 계속되는 고집스런 투정과 아들의 마지막 유치원 생활을 잘(?) 마무리 해 주려는 엄마의 극성이 의기투합하여 유치원 원장선생님께 사정사정한 끝에 억지로 참여 허락을 얻어내는 일을 벌이고 말았다. 아내에게 왜 쓸데없는 일을 벌였냐고 핀잔을 해대었지만 소용없는 일. 결국 공연을 3일 앞둔 주말 오후 최종 연습을 위해 아이와 유치원으로 끌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유치원에 도착해보니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아빠와 함께 왈츠를’이라는 프로그램은 원래 여자아이들이 아빠와 하는 것이란다. 노래 내용도 그렇고 춤 동작도… 그래서 원장선생님도 아내의 전화에 무척 난감하였지만 워낙 간곡한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생전 처음으로 남자 아이를 무대에 올리는 거란다. 우리로 인하여 이미 자리 배치 및 무대 동선을 다 수정하여 새로 정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냥 해야 된다는 말과 함께.


헉! 이게 웬일!!! 여자아이들만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꼭 하겠다고 나서는 아들놈의 고집이나 또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아들을 설득시키기는커녕 선생님께 사정하여 허락을 얻어내는 아내의 무대뽀(?) 정신에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당연히 안 해도 되는 일, 아니 하지 않아야 되는 일을 억지로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마치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을 달랠 수가 없었다. 뒤늦게나마 아이를 설득해 보았지만 역시 막무가내. 결국, 그나마 여자아이들보다도 더 열심히 연습하는 아들의 모습에 위안을 삼으며 어쩔 수 없이 약 1시간동안의 연습을 끝냈다.
드디어 공연 날!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여 공연장으로 향했다. 아무리 아이들 공연이지만 무대위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꽤 긴장이 되었다. 도착하여 무대의상으로 갈아입고 한 번의 리허설 후 무대에 섰다.


유일한 남자아이다 보니 아무리 제일 뒤편 구석에 서 있어도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공연 시작. 워낙 가무에 재능이 없는데다 절대적으로 연습량도 부족하니, 하는 나 자신도 어색하고 보는 사람들도 많이 어색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