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같이 호흡 맞추고
같이 땀을 흘리면서
아빠로서 감사한 마음이…
그러나 사람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또 한번 느꼈다. 조금 전까지도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짜증과 아내와 아이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공연을 끝낸 후 무엇인지 모를 뿌듯함으로 바뀌더니 심지어는 여자아이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열심히 공연한 아들이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다.
사실 그동안 아이와의 관계가 많이 소원하였다. 바쁘다는 핑계(사실 정말로 핑계인 것 같다. 오히려 광고회사 다니는 아내보다도 덜 바쁘면서, 의사이니까 또 교수이니까 당연히 바쁠 것이라는 주위의 시선에 편승하여 괜히 바쁜척하며, 바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로 아이와 같이 놀아주거나 따뜻하게 챙겨주지는 않고, 오히려 한해 한해 커가면서 늘어나는 말썽과 특히 동생이 생긴 후부터 부쩍 심해진 고집을 꺾고자 거의 매일 혼내는 큰소리와 시시콜콜한 잔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돌아서서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 너무 심하게 하는 것 같아 반성도 해 보지만 다시 아이를 대하면 여지없이 똑 같은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공연을 통하여 아이와 같이 호흡을 맞추고 같이 땀을 흘리면서 아이에게 아빠로서의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고 또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시작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놈이 화만 내는 아빠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렇게 고집을 부려가며 여자친구들 틈에서 공연을 하겠다고 하였을까? 또 그러한 아들의 뜻을 돕고자 사리분별이 뻔한 아내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부탁을 하였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코끝이 찡해왔다.
앞으로는 정말로 좋은 아빠가 되리라 결심하며 ‘다이아나 루먼스’의 글을 되새겨본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하지만 오늘도 여지없이 아이에게 ‘손들고 서 있어!’라는 호통과 ‘하지마...!’, ‘그만...!’ 하는 잔소리가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훌륭한 치과의사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