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장구목에
낚싯줄 드리우며
봄의 향연을 만끽
남녁으로부터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나도 봄을 준비한다.
내가 봄을 준비하는 것이라야 기껏 겨우내 아파트 베란다의 다용도실에 넣어두었던 루어대나 플라이낚싯대를 꺼내어 닦고 릴의 스풀에 낡은 줄을 풀고 새줄을 감아두는 일과 여기저기 공연장홈페이지를 기웃거리며 봄밤의 정취라도 느낄 수 있는 무슨 신춘음악회는 없는지 찾아도 보고 가끔 들르는 꽃집에 히야신스나 수선화 같은 알뿌리화초들이 나왔는지 물어보거나 하는 일이다.
언제부턴가 난 계절 중에 봄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쓸쓸하게 서있던 모든 겨울나무들이 연한 이파리들을 내고 봄 숲을 이루면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작은 새들이 지저귀며 짝을 찾아 둥지를 만든다.
얼었던 흙덩이는 제 몸을 부드럽게 하여 새싹들을 돋우고 겨울내내 조각햇빛들을 모아온 매화꽃이 벙글어 꽃을 틔우면 연이어 산수유, 동백꽃, 진달래가 다투어 피며 들판엔 개나리, 수선화, 할미꽃, 제비꽃 등 온갖 꽃들이 꽃잔치를 벌이며 나비와 벌들을 끌어 모은다.
얼었던 강물이 다시 흘러 그 속에 한들거리는 바람도 하늘도, 솜털 같은 구름도 담아 흐르며 그 안에 숨어사는 이름모를 물고기들조차 살찌우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다시 생명의 노래를 시작하는 것이다. 졸립도록 흐뭇한 이 아름다운 노래가 봄이면 나를 바람이 살랑이는 강가로 끌어낸다. 어제 오랜만에 섬진강 상류의 장구목계곡을 찾았다.
엊그제 봄을 시샘하는 비가 내리고 아직 겨울기운을 다 지우지 못한 산등성이에 드문드문 서있는 매화나무는 가녀린 가지마다 그 여리고 작은 꽃을 피워 길 섶과 마을에까지 은근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머무르게 하고 있었다. 장구목계곡은 몇해전까지만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아 천혜의 비경과 청정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어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그런데 두해 전일까? 차가 들어가기 힘든 비포장 오솔길들을 시멘트로 포장을 하고 또 최근에 댐을 만들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 곳을 마치 숨겨 논 샘물처럼 여기던 사람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 몇구비 남지 않은 섬진강의 비경이 그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물속 바위들이 마치 수석전시회를 하듯 박혀있어 물안개가 자욱한 새벽 섬진강은 복사꽃잎이라도 그 물위를 떠간다면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이 여길까? 선초(鮮初), 안견이 수묵으로 그려낸 선계가 이곳이지 싶다.
물길이 소리를 내며 흐르다 잔잔한 소(沼)를 이루고 또 그러다간 휘돌며 다시 여울을 만드는 그 강물 속에 아름다운 매화무늬 쏘가리와 꺽지 동자개며 갈겨니 등 일급수에서만 살 수 있는 토종물고기들이 사는 이곳이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향인 것이다. 바로 여기서 그가 쓴 시들이 메마른 우리정서에 얼마나 깨끗한 물을 부었던가. 야트막한 강물에 바지를 걷어 올리고 들어가 플라이라인으로 멋진 루프를 만들어가며 엘크털로 만든 털바늘을 날린다.
두어 번의 캐스팅에 너무나 예쁜 갈겨니가 올라왔다.
원래 낚시란 공자의 조이불망(釣而不網), 군자란 낚시는 하되 그 물질은 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물고기를 잡는 것보단 자연과 더불어 명상을 하며 호연지기를 기르는 일일 것이다. 강태공이 바늘없이 낚시를 한 연유도 그러하리라. 미늘없는 바늘로 물고기를 낚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 주는 것이 ‘낚시의 도’라고 한다. 너댓 마리 갈겨니를 잡았다 놓아주었다 하고는 입질이 뚝 끊겼다.
꼭 잡자고 하는 낚시가 아니니 상관없다. 물속에 다리를 담그고 들어가 바람도 느끼고 강물도 느끼고 산내음 새소리가 다시 나를 깨끗하게 할 때까지 물심일여, 무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일 뿐이다. 오래전 40년을 넘게 치과의사를 하시다 은퇴를 하시는 대선배님께서 우리들 치과의사는 오랫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려면 건강해야 하 고 건강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