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오면
어두운 침묵처럼 가라만 앉아있던 온세상 많은 것들이 4월만 오면 무거운 짐들을 떨치고 하품을 하지. 가장 먼저 등장하는 햇살에 찔리고 따스한 바람으로 찬기운을 씻고나면 그 다음은 노란빛, 하얀빛, 자주빛 꽃이 눈을 어지럽히고, 그러면 내 마음엔 바람이 들고….
고등학교시절 하숙집옆 철롯가 오동나무 서있던 담벼락 밑에서 밤이면 이 노래를 불렀었지.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준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그로부터 많은 세월들이 지난 어느날에도 꼭 이맘때면 이 노래가 생각나고, 그 분위기가 떠오르고, 또 다시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감흥이 있고, 창피한 얘기지만 눈시울도 뜨거워지고….
지금은 그 철로도, 그 집도, 오동나무도 흔적도 없어지고 휑한 길만 남았지. 그 휑함처럼 내 기억도 빈자리만 있지 않을까 빈마음만 설레네.
또 하나의 4월
고등학교 시절을 마치고 내가 성인이 되고 나의 존재와 책임이 무거워졌을때 무언가 어긋난 삶의 이정표를 느끼며 전전하다가, 드디어 모든 짐을 털고 그야말로 야인이 되었을때 어줍잖은 자의식과 어설픈 눈으로 본 세상과 내안의 혼란 속에서 내박쳐 놓았던 2년의 대학생활을 고스란히 남겨둔채 다시 고향으로 쫓겨왔던 그때.
정말 궁극의 공허라 표현할만한 빈마음으로 맞은 4월은 누가 말했었나, 정말 잔인한 4월 이었지….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바람을 느끼며 나른한 아지랑이 숲을 헤메기도 하고, 전주천 풀밭에 드러누워 햇살은 이불삼고 풀내음은 베개삼아 낮잠도 자고 주변 구석구석을 자전거타고 헤집다가 야트막한 산모퉁이 바위 위에 앉아 내가 없어도 잘만 돌아가는 이 세상을 원망해보기도 하고, 주변에 누구하나 찾아 주는 이 없어 소식하나 전해 받을 일 없는 허허로움을 씹어보기도 하고….
더는 나란 어떤 모양새인가? 내 마음의 작용은 어떤 식인가? 내가 했던 건 무엇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만큼인가? 또 내가 해야하는 것은 무엇이며 또 얼마만큼의 애증과 시련의 시간들이 필요한 것일지 나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도 하고….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건 그저 적막한 시간과 빈자리들 뿐…. 그 젊은 날의 어느 사월은 이렇게 시작되었지.
그리고 개나리 파란잎이 돋고, 목련의 모가지가 부러지고, 라일락 냄새가 진동할 무렵, 아카시아 향기 져며들고, 시골 할아버지댁 논바닥 개구리 소리가 귀를 어지럽힐 무렵, 논두렁에 앉아 새참 떠먹고, 밤하늘 별빛 친구삼아 어둑한 들판길 배회하던 무렵, 어느 고즈넉한 어스름밤, 나는 가슴이 아프도록 모질고 야속한 느낌속에 빠져버렸지.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어디선가 이 시를 보고난 후 내 마음에는 큰북이 둥둥 울렸던거야 아마도 고행의 끝, 깨달음의 순간에 느끼는 어떤 희열이 혹 이런건 아닐까 하면서….
이 시의 주제와 나는 별 관계없는 것 이었지만, 이 시의 어느 한구절이 나를 절망케하고 또 그 절망을 버리게도 만들었지.
‘나의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는 이 한마디는 여태껏 매달려왔고 전전긍긍했던, 막연했던 나의 큰(?)괴로움을 단 한마디로 설명해 주었던거야. 결국 “내 괴로움은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라고….
도대체 내가 무엇을 괴로워했었던가? 시대를 슬퍼한적 없지, 나의 불우함을 비관할일 없지, 기껏해야 적성이 안맞는다거니 학교생활이 재미없다거니 하는것 뿐이었음에도 왜 그리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