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북한이구나!
저들이 우리 동포구나!
뭔가 힘껏 해줘야겠구나!
지난 2월 26일과 3월 24일 두 차례에 걸쳐 온정리 인민병원에 진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2월에는 이병태 위원장님, 김병찬 사무총장님, 전향숙 선생님과 한국 요시다 문세규 사장, 한림덴텍 이덕균 과장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갔다 왔고, 3월에는 고강 선생님, 목동 예치과 노수영 원장님과 함께 승용차로 다녀왔습니다.
근 30년 가까이 개업의로 활동하면서, 타성에 젖은 생활에서 삶의 가치 등에 대해 회의를 느끼면서 늘 봉사의 필요성과 기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만 해놓고 일회성이 되거나 열심히 하지 못할 것이 걱정이 돼 쉽게 시작하지 못했던 나에게, 북한 인민에 대한 진료봉사라는 것이 신선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시작이 아무리 작더라도 열심히 해서 이름뿐인 봉사가 되지 않게 헌신적으로 해야 하며,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2월 26일 막상 출발을 하니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간성을 거쳐 고성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전향숙 선생님이 진지향을 간식으로 준비해오셨는데, 몇 차례 다녀오신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제 머릿속은 맛있는 과일 보다는 온통 북한에 가 있었습니다.
첫날 밤 자정이 넘어 도착한 숙소에서 이병태 위원장님으로부터 그동안의 경과를 간략히 들은 후 서너 시간 잠을 청했지만, 긴장된 탓인지 거의 뜬 눈으로 세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여 북측 땅을 밟게 되면서 눈에 들어오는 남측과는 사뭇 다른 경관, 매스컴에서만 보았던 인민복 차림의 초소경비병들, 드문드문 산위에 붉은 깃발을 들고 한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서있는 초병들… 그들의 체구는 작고 말라 쓰고 있는 큰 군모가 짓누르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여기가 북한이구나. 저들이 우리의 동포구나. 저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힘껏 해줘야겠구나’ 다짐하며 온정리 인민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당일 오전에는 위원회에서 기증한 유니트체어의 설치관계로 두 시간가량 시간을 얻은 전향숙 선생님과 나는 금강산 구룡연을 등반하는 행운이 있었는데 오염되지 않은 천하 절경 금강산의 모습에 탄복하며, 돌아가신 아버님이 할아버님을 모시고 금강산 구경을 시켜드려 효도하였다는 말씀이 떠올라 다시 한 번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후부터 진료가 시작된 온정리 인민병원은 이러했습니다.
오래된 시골의 보건지소 같기도 하고 낡은 실험실 같기도 한 인민병원은 콘크리트와 회벽으로 돼있었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대하게돼 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의사, 간호사들이 담소하는 벽화는 발걸음을 멈칫하게 합니다. 복도로 돌아들면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문구는 환자진료를 마치고 나오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그들의 실상을 알게 합니다.
이런 인민병원에서도 치과 진료소만큼은 시설이나 기구 등이 제법 병원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두 명의 구강의사와 세 명의 간호사 등 인력도 갖추고 있어 그동안의 이병태 위원장님과 김병찬 사무총장님의 수고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소아진료 준비물로 불소도포용 트레이와 불소겔, 소아용 S.P 크라운 등 몇 가지를 준비해가지고 갔으며, 소아치과 전공의가 온다고 하여 소아환자 십여명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사탕 등의 보급이 많지 않으니 우식이환율이 낮을 거라는 예측과는 달리 아이들의 구강 상태는 거의 모두 우식와동과 잔근치, 심한 스테인 등을 갖고 있었으며 일차적인 치료는 우식처치, 잔근발치, 치수치료 등이 될 수밖에 없었고 불소도포(FTA)는 다음기회로 미뤄져 3월에야 겨우 한명에게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북한 아이들은 매우 영리하고, 예의 바르고, 씩씩하여, 의사입장에서는 치료하기는 매우 편하였지만, 눈 한번 꿈쩍 않고 너무도 잘 참는 아이들의 모습이 저를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