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방향에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늘 나를 따라준 아내에 감사
“웨이컵 데리, 웨이컵!!, 웨이컵!!!”
“엄마, 아빠… 떼리베어 반물간 가요~우~”
음… 또 시작이군. 화창한 5월의 일요일 아침, 난 27개월 된 아들의 호통에 겨우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제 공보의 2년차, 제주에서 맞이하는 봄날의 아침은 여유롭지도 상쾌하지도 않은 그저 육아의 시작이다.
작년 가을 정도부터 이것 저것 배우기 시작하던 민서가 이제 제법 말 같은 말도 하고 영어도 곧잘 내뱉는 걸 보면 한없이 대견스럽다가도 매일 아침마다 외쳐대는 “웨이컵 데리~~!!!” 소리를 들을 때면, 아들치고는 말이 참 빠르다는 주변의 칭찬이 무색하게만 들린다. 솔직히 가끔씩은 자명종 소리보다 두렵다.
어젯밤 열나는 민서를 재우느라 밤새 힘들었는지 아내도 아쉬운 잠을 달래며 뒤척이고 있다. 아침부터 저렇게 활기찬 민서를 보고 있자니, 저 녀석이 과연 어젯밤 열이 38~39도를 오르내리며 찡찡대던 놈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참 아이들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보철과 수련을 받으며 민서를 낳고 키우느라 시간과 여유에 목말랐던 터라 아내도 나도 공보의 생활의 여유로움에 큰 기대를 가졌었다. 하지만 웬걸 어릴 때부터 잠이 적었던 민서는 아무리 늦게 자도 늘 나보다 일찍 일어나기를 즐겨하더니, 요즘 들어서는 또록또록한 말솜씨로 기상나팔까지 불어댄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듯이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은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법. 아내가 민서 재우느라 “내일 민서 열도 내리고, 날씨도 좋으면, 우리 다같이 테디베어 박물관에 가자. 그러면 민서 일찍 자야지…” 라고 했던 그 말, 아들놈에게는 한껏 기대를 심어 주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 기상나팔은 테디베어 박물관이다.
잠시 고민에 빠진다. 제주시에서 중문까지 약 1시간, 지금이 9시니깐 민서만 아침을 먹이고, 우리는 김밥을 사서 차에서 아침을… 낮잠은 2시쯤에, 혹시나 해열제랑 항생제도 챙기고… 봄이지만 긴 옷도, 아마 박물관은 추울건데… 기저귀랑 물티슈도, 끓인 물도 챙겨야하고… 이것도 저것도 음… 이렇게 복잡하게 다시 외출을 감행(?)해야 하나? 아내와 난 잠시 마주보며 뻔한 고민을 하고 있다.
“작년 생각하면 짐도 많이 줄었지 뭐, 이제 민서 혼자서도 잘 걸어다니고 말도 잘 알아듣는데.” “맞어, 글구 얼마 전에 들었는데 제주도 날씨가 외출에 좋은 날이 일주일에 하루도 안된데….” “그렇지!!” 이렇게 죽이 맞아서 부부인가보다. 우리 가족은 일심단결해서 출동 준비에 들어간다. 우리 아들을 위해 이렇게 화창한 5월의 봄날을 놓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SUV 짐칸에 이것 저것 실어 넣고, 서부관광도로를 힘차게 내달린다. 너무나 쨍한 제주도의 봄 햇살에 피부가 상할까 안쓰럽기도 하지만, 차창을 넘어오는 맑은 공기에 아직 덜 깬 아침 잠은 한번에 날아가 버린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소위 명품에 목말라하는 요즘, 제주도가 주는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명품이 아닐까?
부스럭거리며 옆에서 아내가 김밥을 꺼내 운전하는 나의 입으로 건네고, 한입 들어가는 맛에 아침 운전이 더 즐겁다. 뒤에 앉은 민서는 자기도 달라며 졸라댄다. 남편 먹이랴, 아들 먹이랴, 두 아드님 덕분에 화려한 싱글에서 시녀로 전락했다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 우습기도하고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문득 난 참 복이 많은 놈이란 생각이 든다.
이쁜 아내와 귀여운 아들, 따뜻한 가정. 지난 10여 년간 부산의 타지 생활에 느꼈던 외로움과 쓸쓸함을 다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제주로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내 인생의 방향에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늘 나를 따라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내 맘을 적신다.
옆에서 챙겨주고 김밥 먹여줄 아내가 있어 행복하단 내 말에 그럼 훌륭한 비서랑 살지 그랬냐는 핀잔 섞인 아내의 대답이 오가며 어느 덧 중문 관광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멀리 뾰족이 솟아오른 테디베어 박물관의 유리탑을 보고 민서가 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