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이 안들때
내 맘을 느긋하고 편하게 하는
저 하늘과 나무들이 고맙다
김 인 숙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GPD
우리 병원이 있는 주변은 그린벨트 지역이다. 그래서 내가 주로 생활하는 의사 사무실에서 바라보는 창밖 세상은 요즘 초여름의 무성한 초록빛이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저 멀리 의사 사무실 창문을 바라볼 때 내 눈을 즐겁게 해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차분하면서 약간은 서늘한, 막 하루가 시작되려고 하는 가운데 새들과 닭들이 목청을 돋우는 그런 기운이 좋아서 아침 일찍 병원에 오려고 한다.
여러 가지 변화가 졸업 후 몇 개월 사이에 있었다. 난 이제 수업시간에 번호가 불리는 학생이 아니라 ‘아무개 선생님’이 되었다.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 로고가 찍힌 가운을 입으면서, 책임감이 느껴지던 이런 호칭이 처음엔 많이 어색했다. 국시를 보면서 6년간 배운 지식들이 한번은 정리되었다 싶었는데, 시험장을 나온 순간부터 기억은 온데간데 없는 듯하고, 진료실에서 교수님들을 observation할 때도 원내생 때보다 더 잘 보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할 줄 아는 것도 거의 없는데, 알 것이라고 기대되어지는 부담감이 있었고 가끔 환자가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게 되나요?”라고 물으면, ‘윽’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난감함이 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여유있게 “조금 있다가 교수님께 여쭤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겉모양은 바뀌었는데, 알맹이가 채워지지 않아 속이 매우 허전하다.
그리고 나는 새로 시작하는 병원에서 처음 시도된 GPD(general practice dentistry)수련 과정을 밟고 있다. 개원 초기에 병원 직원이 모두 참여하는 입문교육이 있었는데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늘 받던 질문이다. “GPD가 뭐예요?” “인턴- 레지던트 같은 전문의 과정은 아니구요, 전체 과를 돌면서 일반적인 개원의로서의 수련을 받는 과정입니다.” 라고 대답은 했지만, 나도 GPD가 정확히 어떤 제도인지 잘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행되는 제도이고 일부 대학병원에서만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수련교육내용이라든가, 진료참여 정도 등이 명확하게 제시된 것이 없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모양새를 갖추어 나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GPD 3개월째인 요즘은, apicoectomy에서 수술 마지막에 봉합도 해봤고, 고무 인상재로 인레이 환자의 최종 인상도 뜨고 있다. 변화의 물결을 탄다는 것이 기회가 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에 내가 한 선택의 결과는 훗날 알 수 있게 될 것 같다.
치과대학에 입학했을 때, 친구가 한 말이 있다. “넌, 존재 자체가 눈에 띌 거야.” 아니나 다를까 난 띠 동갑뻘인 동기들과 예과 1학년을 시작했고 학교 생활도 남들보다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며 보냈고, 그만큼 성숙해졌다. 그런데 졸업을 해서도 난, 동년배인 두 분의 교수님을 모시는 수련의 1년차, 병원생활 초년병이다. 지난 6년간 배울만큼 배웠다고 생각했던 ‘인간 관계학이나 위계 질서학’이 병원에선 또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의국 생활을 함께 하는 동기들에게 가능하면 나이 든 사람 티 안내려고, 폐 안 끼치려고 할 일 알아서 잘 챙겨하기 등 같은 또래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할 수도 있는 일에 또 한번 생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얼마 전에는 병동에서 수술 환자 구강내를 suction할 기구가 필요했는데, 어느 위생사가 “그걸 선생님 보고 가져오래요? 그쪽 AN들이 내려와서 가져 가야죠”하는데 어리둥절했다. ‘내가 모르는 질서가 여기에 또 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도 창밖을 내다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이제 겨우 치과의사로서 발걸음을 내딛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아무 생각이 안들때, 내 맘을 느긋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저 하늘과 나무들이 고맙다. 교과서에 나오는 사진처럼 되어 있는 교수님의 지대치 prep을 볼 때, 언제 저기까지 가나, 아니 갈 수는 있는 건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