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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9)임기를 마치고 / 신승철


잘못에 대해선
꿇어야 할 용기가 필요하고
진실에 대해선 타협하지 말아야


치과대학장 임기를 끝냈다. 그것도 중임까지 무사히 마쳤으니 개인적으로는 보직에 대한 행운이라 할 수 있으며, 재임 중 도와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어떤 이는 “시원섭섭 하지요”라고 인사치례를 하는 분도 있었으나 시원은 한데 섭섭하진 않다.

 

오히려 그들에겐 “학장실 푯말을 잘못 보고 화장실인줄 알고 찾아 들어오는 치과병원 환자들로부터 해방되어 기쁘다”라고 농담도 해 준다.
보직과 권력에 맛 들면 인생이 참으로 불행해 짐을 우리는 과거 10여년, 또는 18년을 했던 대통령들의 비참한 최후의 역사에서도 잘 알고 있지 아니한가. 그래서 모든조직에는 제도적으로 적절한 임기를 정해놓고 있는 것이다. 임기를 잘 마친 것도 축복인지라 감사하는 마음이다.
재임 중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었음 소개해 달란다.


치과대학은 역시 치과대학생의 교육이 우선이고 이들을 지역과 국가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양질의 치과의사로서 양성하는게 그 첫번째 목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수백명이 수년간의 학생으로서 함께 학교생활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사고가 안 생길 수가 없다. 그중 다소 잦은 사고가 바로 학생들 간의 폭력사고다. 아무리 말로, 대화로 따지라고 강조해도, 성급한 학생들은 급하면 주먹이 먼저 나가나 보다.


한번은 동급생끼리의 폭력사고가 발생했는데 피해학생의 상처가 의외로 컸다. 학생간의 분쟁을 넘어 양측 학부모간의 대립이 심화되었고 결국은 법정문제까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번졌다. 아무리 가해학생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라해도 “팰만하니까 팼다”며 쌍방 잘못만을 주장했다.
피해학생 집안도 용서는 커녕, 가해학생의 법적 처벌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피해학생의 후유증으로 일년 휴학을 결정해 주던 날 밤, 가해학생을 전화로 불러냈다.


“자네 나랑 함께 갈 곳이 있어”라고 말하고는 차를 고속도로로 몰아 서울근교의 피해학생 아파트로 늦은밤에 느닷없이 쳐 들어갔다. 아드님의 재학중인 대학의 학장임을 밝히니 문은 열어주는데 함께 온 가해학생 얼굴을 보시더니 다소 실랑이를 벌였지만 일단 같이 들어가 피해학생과 그 가족들이 모인 거실에 앉았다. 그리고는 내가 정중히 무릎을 꿇었다.


“제가 치과대학장으로서 우리학생들을 훌륭한 치과의사로 양성하려고 교육시켜 왔지만, 결국 댁의 아드님에게 상처를 주고 학업을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함께 키우고 있는 가해학생마저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으니 모두가 저의 교육 잘못이라 생각되어 진심으로 학부모님께 사죄를 드립니다”.
나의 돌연한 행동에 그 집안 가족들은 놀라서 모두가 나를 붙잡아 일으키고, 가해학생은 엉엉 울며 “학장님, 제가 잘못 했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라고 했고, 피해 학생마저 무릎 꿇고 글썽이고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며 가해학생과 서로 화해겠다며 울먹였다.


모두가 눈물에 젖어 서로 악수하고, 뉘우치고, 용서하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우리 치과대학과 앞으로 이들이 이루어갈 치과계는 인간적인 희망이 있다고 느껴졌다.
자정이 훨씬 넘어 흐뭇하고도 착잡한 마음으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렀더니, 화장실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눈에 띄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한 발 더 가까이…!’
사람이 꿇을 때와 버틸 때를 확실히 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잘못에 대해선 꿇어야 할 용기가 필요하고, 진실에 대해선 아무리 달콤한 유혹이 있더라도 불의와 타협 하지 않고 자신과 이웃을 배신하지 않으며, 힘들고 귀찮아도 끝까지 버티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이제 치대 졸업후 새내기 치과의사가 된 그 제자들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