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바빠도
자신에 투자를 게을리 말고
멋지게 연출하며 살아가길…
1980년에 개원한 뒤 처음 10년간은 내 생활의 전부가 치과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미국 의학 잡지에 실린 글을 읽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글은 미국 개원의들의 진료와 삶에 관한 글이었다. 대게 두 종류의 삶으로 나뉘었는데, 오로지 진료와 병원경영을 인생의 전부로 사는 의사들(어쩌면 타고난 의사일 것이다)과 진료와 삶을 적절히 조화를 이뤄 진료를 즐기는 의사(어쩌면 날라리 일지 모르지만)들로 나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은퇴시기와 삶의 만족도를 비교해보니 소위 타고난 의사들은 대부분 50대 초반에 은퇴를 생각하고 은퇴 후 진료를 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어도 삶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못했다.
소위 날라리 의사들은 70이 넘어서 은퇴를 생각하고 은퇴 후에도 진료를 주 1회 보길 원했고 삶의 만족도도 높다는 것이다. 또 그들 가족과 환자들의 의사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타고난 의사보다 날라리 의사가 훨씬 더 좋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은퇴준비는 어떤 삶을 살든 40대부터 서서히 시작하라는 글이었다.
아직 은퇴라는 단어는 생각해 본적도 없는 나이였지만 오직 치과가 전부였던 내겐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인생은 마라톤 경기와 같다고 했어. 처음부터 너무 속도를 내서 달리면 일찍 지쳐 결국 끝까지 못달리지만 속도를 잘 조절하면 완주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 개원의는 정년이 없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우리의 직업을 계속할 수 있으니 지금부터 조절하자. 난 너무 힘들었어.”
하여 10년 만에 먼저 진료시간을 줄이고 당시 주5일 진료를 실시하는 치과는 거의 없었는데도 난 과감히(?) 강행했다. 후배들은 “언니 너무 노시네!” 하며 부러워했다. 여자치과의사로의 내 삶을 좋아했기에 일찍 지치지 말고 할머니가 되어도 오래 진료하겠다는 욕심(?)으로 40대부터 준비를 한 것이다.
그렇게 10년을 하다 뜻하지 않게 50대 중반에 은퇴(?)를 하게 되었다. 인생이 자기 계획대로만 되어주지 않는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다니….
갑자기 많은 시간들을 처음엔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 되었다. 그 이유가 좀 부끄럽지만 내가 내 자신을 여자만으로 돌리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라면 한심한가요?
난 늘 시간에 쫓기며 20년 넘게 개원의로 살면서 나 자신을 꾸미는 것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 예전에 멋내는 여자를 이해하지 못했고 한심하게 생각까지 했었지만 지금 난 외출하려면 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나 자신을 멋지게 꾸미는 시간과 비용이 아깝기는커녕 즐기기까지 한다. 나를 위한 시간이 많아지더니 지금은 건강도 좋아지고 미모도 예전처럼 예뻐지는 것이었다.
지난 봄, 딸의 웨딩촬영에 드레스를 입은 딸의 모습을 보며 급기야 나도 찍고 싶어졌다. 이런 내 맘을 알아차린 딸은 “엄마도 찍고 싶구나. 너무 예쁠 거야. 아빠는 내가 설득할게… 아빠 엄마 같이 찍어”하며 선뜻 예약을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덤으로 얻은 사진이 요즘 내겐 큰 기쁨이 되고 있다.
58세에 나르시즘에 빠진 것이다. 우리 부부의 멋진 사진을 침실에 걸고 “내가 이 나이에 이렇게 우아하고 요염하게 소위 S-line의 몸매와 미모를 간직하고 있다니…” “남편도 이렇게 멋진 중년의 모습이라니…”하며 내 자신의 자신감도 생기며 큰 활력이 되었다.
수퍼우먼으로 살던 지난 날, 난 늘 지치고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대학시절(연세치대 1회) 난 홍일점으로 동기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공주처럼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졸업 후 수련·개원을 하며, 귀엽고 예쁘던 내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였는데 은퇴 후 3년 만에 내 예전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나의 모습을 나뿐 아니라 가족도 너무 좋아하고 있다.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이 지난 20여년 열심히 개원의로 살아왔기에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