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1위 경제 대국이
지구촌 이웃을 돌보는데
인색하지 않았나 반성하며
8월이 끝나갈 무렵 몽골은 가을이었다. 청명하고 높은 하늘은 우리나라의 시월에 가까웠고 진료봉사를 위하여 방문한 지역, 그 광활한 초원과 낮은 구름은 나의 마음을 넓게 하였다. 학기 중엔 쉴 틈 없는 수업과 실습, 시험에 쫓기며, 치과대학 속에서의 나만을 느끼다가 드넓은 세계와의 만남은 나 뿐만 아니라 함께 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치의학대학원 28명 모두의 마음을 새롭게 했던 것 같다.
김태우 교수님과 수련의 선생님들의 휴가기간을 감안하여 4박5일의 일정으로 진료 기간은 총 3일 이었는데, 현지 선교사님의 가이드에 따라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1시간 이내 거리의 서로 다른 교회를 방문하며 매일 150명 내외의 환자를 치료하였다.
출발 전 준비모임에서 모든 멤버들이 늘 기도하던 것 중 하나가 ‘겸손함’이었다. 치료의 시혜를 베푼다는 생각을 하고 가면 교만해져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질 수 없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의 준비 때문이었는지 몽골의 사람들이 친구처럼, 동네 어른처럼 느껴졌다. 순박한 몽골사람들은 일반의사에 비해 만나기 어려운 치과의사들을 만났다고, 무료 진료에 고맙다고 염소를 잡아주기도 하였다.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님들중 절반이상이 의사였다고 하는데, 그분들의 느낌이 아마도 몽골에서의 우리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사랑과 헌신으로 우리나라 땅에서 풍토병과 과로로 돌아가신 그분들에게 우리가 참으로 사랑의 빚을 진 자들로서 세계 11위의 경제규모를 갖춘 우리나라가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데 좀 인색하지 않았던가 하여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서울대 치의학대학원과 자매결연을 맺은 몽골 국립치과대학 학생들과 수련의 선생님들이 우리와 동행하여 배움과 봉사의 기회를 함께 했던 것도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이었다. 똑똑하고 순수한 학생들이 선진의료기술을 배우려 열심이었던 한편, 먼 길을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이유로 와서 수고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들에게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
석별의 정을 아쉬워하며 눈물 흘리고 내년에 꼭 다시 오라던 몽골학생들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꽤 오래 ‘몽골 폐인’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