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자구리 바다의
더디게 흘러가는 ‘시계’처럼
상생하는 사회를 꿈꾼다
이래저래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서귀포시 보건소 공중보건치과의사로 근무한지 벌써 2년반이 지난 것 같다. 처음 배치 받은 날은 차(코란도)에 이삿짐을 한가득 싣고 제주항에서 출발해 잘 알지도 못하는 촌놈이 서귀포까지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는 5·16도로를 탔다. 제주도에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5·16도로는 군사정권시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만들어진 도로란다. 그 험준함을 보면 정말 그 때 그 시절이니까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이 들고 또 짜증이 난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짐을 잔뜩 실은 내 차는 참 거북이처럼 더듬더듬 올라갔다. 차가 뒤집힐 것 같기도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겨우 넘었다. 지금이야 이 도로를 거짓말 좀 많이 보태면 ‘initial D’에 나오는 다운힐 경주차량처럼 끼기긱 거리면서 5·16 택시들과 맞짱뜨면서 다니고, 저번 겨울에는 그 도로에서 360도 회전 비스무레한 드리프트도 해보았다.(안죽은게 기적이다.)
4월 아직 추운 때 관사에 누워서 자고 있으려니 잠은 안오고 참 추적추적했다. 그러다 잠들었는데 한 두어시간 잤을까 갑자기 허벅지가 엄청 아프면서 정말 자다가 “악”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처음엔 쥐에 물린 줄 알았다.(쥐에 물려본 적도 없으나 워낙 아파서 지레 짐작했다.) 결국 또 물릴까 무서워서 불키고 꾸벅꾸벅 졸다가 출근했다.
이틀뒤에 나를 습격한 놈을 포획하는데 성공했는데 정체는 지네였다. 머리털 나고 처음보는 지네였다. 크기가 족히 20cm은 되었을 거 같다. 너무 신기해서 생포했다. 다음날 유리병에 넣은 지네를 한방선생님한테 보여주며 이거 팔면 얼마냐고 뿌듯해 하며 물어보니 100마리에 만원이란다. 좌절! 지네는 쌍으로 다녀서 난 며칠 뒤에 남편인지 부인인지 모를 놈을 한 놈 더 잡고 지네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그 뒤 박봉임에도 이것저것 정말 신나게 해보았다. 승마도 몇 주 해보았는데 말 타는 게 의외로 무섭고 특히 말이 뛸 때 안경이 덜그럭 거려서 불편했다. 또 말 타고 나면 온몸에서 말 냄새가 난다. 그다지 좋지 않은 냄새다. 옛날에 백마 탄 왕자님은 참 말 관리를 잘 한거다. 제주도에 있는 백마는 다 회색마다. 난 백마를 본적이 한번도 없다.
해수욕장은 거의 3일에 한번 꼴로 갔다. 바나나보트, 땅콩, 플라이피쉬 다 타보았다. 땅콩은 치질예방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땅콩타기 전에 꼭 속을 비우고 타길 권한다. 엉덩이를 자극하는 게 아주 환상이다. 그리고 아직도 정말 무슨 수련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는 골프! 이 운동은 정말 어려운 운동인 것 같다. 운동하다가 깨달음과 마음의 가지런함을 배우는 운동이기도 하고 정말 나와의 싸움이다.
예전엔 무슨 텔레토비 동산에 놀러간 스머프마냥 골프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게 좋았는데 공인줄 알고 열심히 뛰어가면 버섯이었던 적도 많았다. 요즘은 진지하게 스코어 관리중이다. 그래도 나의 스코어는 말할 수준이 못된다. 나에게 많은 좌절과 또 좌절이 있기에 희망도 안겨주고 또 어렵기에 그만큼의 성취감도 안겨주는 골프는 정말 인생이다.
이 지방 변두리 인구 4만정도의 소도시에 살다보면 현실감을 많이 상실한다. 서울에서는 오늘도 많은 공중보건의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것이고 또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주말이면 개업자리를 알아보고 있을 것이고, 또 적지 않은 이들이 대한민국을 떠나 기회의 땅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바다에 낚시를 드리우는 나는 행복하다.
사실 이 릴레이 수필을 제안 받으면서 어떻게 써야하나 하며 그동안 잘 안 읽던 치의신보를 뒤적거렸다. 4개 정도의 치의신보를 랜덤하게 집어서 릴레이 수필을 화장실갈 때마다 읽어 보았다. 처음에 1~2개 읽을 때 까지는 몰랐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자본주의의 틀에 자신을 맞추어가는 치과의사들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는 내용이었다. 치의학만 가르치는 곳이 치과대학은 분명 아닐것인데.
한 5년 전 더 우수한 학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