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아끼고 사랑하며
차의 단점도 끌어 안아야
진정한 카 마니아라 할 수 있다
치과원장은 내 직업이다. 그리고 카 마니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라는 물건 때문에 주변의 지인들이 불러주는 또 다른 내 모습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일상의 나’라면, 와이프와 애기들이 잠든 시간(대개는 밤 11시가 넘어서지만)부터는 자동차를 장난감 삼아 이렇게 저렇게 가지고 노는 내 취미 생활이 시작된다.
운이 좋은지, 아니면 현실 감각이 무뎌서인지는 모르지만, 난 다양한 장르의 각기 다른 4가지 색깔을 가진 4대의 차를 데리고 산다. 물론 그중 어느 하나도 정말 억(?)소리 나는 몸값을 가진 차는 없다. 4대를 다 더하면 꽤 되어서 부러운 시선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안타깝게도 그들은 합체는 되지 않는다.
패밀리 세단 용도로 사용하는 볼보 S80T6(2002년 데리고 온 첫째), 겨울철·험한길 운행과 평상시에는 와이프 차인 Jeep 뉴체로키 3.7 리미티드(2003년 데리고 온 둘째), 출퇴근과 꼬불꼬불한 길을 빡세게 달리며 즐기는 것이 주용도인 이것 저것 튜닝된 현대 클릭 1.3(2003년 데리고 온 셋째), 그리고 하늘을 보며 달리는 즐거움을 위한 2005년도에 데리고 온 막내 Benz SLK350이 그들이다.
치과의사라는 힘들고 지친 일상과 남편·아버지로서의 역할이 끝나면, 마음에 닿는대로 이 녀석들 중 하나, 혹은 둘과 시간을 보낸다.
내가 이 녀석들을 데리고 노는 방법은 다양하지만(어쩌면 혼자놀기의 진수일지도 모르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달리고 서고 방향을 바꾸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다.
대전이 가장 매력적인 것 중 하나는 순환 고속도로가 있다는 것과 주변의 국도들이 다양한 모양새로 이 녀석들과 놀기에 최고의 놀이터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하드록을 같이 듣고, 질주도 하고, 대전의 야경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이 녀석들과 데이트를 한다.
어떤 때에는 자동차 동호회의 차들과 함께 소위 배틀이라는 엎치락뒤치락 달리기도 하며, 짧은 거리를 전력 질주하는 드레그 레이스도 한다.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나와 이 녀석들만이 함께하는 시간이다.
안전한 장소라면 어디든 차를 세우고,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며 차분하게 하루를 마감하는 여유도 누릴 수 있다.
자동차란 물건은 참 신기하게도 마치 생명체처럼 자신을 표현할 줄 알고, 표정이 존재하는 것 같다. 배가 고프면 주유소에서 연료를 주어야 하고, 어디가 아프면 정비소라는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 깨끗하게 잘 씻어 주어야 하고, 새 옷을 사주어야 하듯 때가 되면 소모품들을 갈아 주어야 한다.
2002년에 참 많이도 좋아했던 현대 투스카니 엘리사란 녀석을 누군가에게 시집보내면서 그날 하루종일 가슴이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새 차를 갖게 되는 즐거움보다 그 녀석과의 이별이 주는 슬픔이 더 크다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그 후에 구입한 차들은 어느 것 하나 떠나보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이 녀석들을 데리고 사는 것이 만만치는 않지만, 이 친구들이 곁에 없는 것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카 마니아라고 해서 자동차에 대해 특별한 경험과 뛰어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차에 대한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자신의 차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차가 가지는 단점도 이해하고 끌어 안을 수 있는 사람, 어쩌면 그런 사람이 정말 카 마니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내가 가진 차들로 인해 난 경험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일상에서 치과의사로서 다양한 환자를 만나고 경험이 축적되어 내 진료의 질이 성숙해지듯이, 또 다른 나는 이제 정말 자동차를 사랑하는 카 마니아로서 철이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을 마치면서 이런 남편을 데리고 살아주는 와이프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