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풍성함은 온데간데 없이
줄기와 말라 버린 잎만 남아
다음 세대를 위해 흙 속에 묻었다
지난 늦은 봄에 콩을 심었다. 심는데는 단 2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흙속의 물기가 새 생명을 인지하고 두껍고 단단한 막을 스물스물 녹여낸다.
촘촘한 막은 젤리처럼 변하더니 한층 더 안쪽으로 밀려들어가 마침내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흙속의 물기는 콩에게 생명의 포텐샬을 점화시킨다. 저 콩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이미 하나님의 경이로움으로 입력된 정보의 청사진을 하나 둘 껍질을 벗겨내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시간에 다음 생명의 단계를 준비시킨다. 며칠 지나지 않아 흙속에서 작은 미동이 느껴지며 무엇인가가 슬며시 올라온다.
콩이 흙속에서 천장을 뚫고 나온다. 그 다음날 아침에 얇은 연두빛의 미세한 떡잎 2개가 나와있었고 태양광을 조금이라도, 마치 갓 태어난 신생아가 엄마의 젖꼭지를 세차게 빨아대듯, 날개를 활짝 펴고 있었다. 가끔씩 들여다보니 떡잎은 점점 엽록소로 변해가고 있었다.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살짝 엿보았다.
아뿔사 콩은 사춘기가 되어 자기의 몸을 가누질 못하고 옆으로 누워 버렸다. 급하게 대나무를 꽂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 한나절이 지났나보다.
내가 외출한사이 덩굴은 마치 로프와 같이 대나무를 감아 버렸다. 그 짧은 시간에 무엇인가가 대나무에 붙게 만들었는지… 계속해서 꼭대기를 향해 올라갔다. 여름이 왔다. 가끔 내 와이프가 나에게 묻곤 한다. 무슨 이야기를 콩하고 나누냐고 그러면 나는 “아니, 그냥”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나는 그 생명체와 수많은 교감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콩에게서 나의 생각에 영감을 가미시켰고, 나를 동심의 세계에 데려다 주는 선물을 받았다.
꿀벌들이 윙윙 거리며 꽃망울 주위를 선회하다 꽃밭에 앉아 과즙을 빨아먹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꽃이 시들면서 꽃잎이 떨어지며 콩이 열린다.
나는 드디어 흙의 기운을 흠뻑받은 그리고 껍질이 돌고래 피부같이 뽀사시한 콩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올 여름 내내 콩은 열매를 맺어 줄것이고 아마 잘하면 동생네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으리라.
가을이왔다 그 여름의 풍성함은 온데 간데 없이 줄기와 말라버린 잎만 남은 것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줄기와 잎을 흙속에 묻었다. 4분밖에 안 걸렸다.
나는 이 4분에 감사했다. 그리고 난 자연의 관대함에 기뻐하며 한시간을 보냈다.
내가 이 생명체의 수확을 즐길때까지 총 6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계절을 통해서, 무제한으로 공급된 흙과 공기, 태양, 비와 곤충들까지 이 조그만 씨가 그 자신이 수백번 다시 재생될 수 있도록 충성스럽게 일을 한 것이다.
이런 경이로움이 조금만 노력해도 이루어지건만 왜 나는 아스팔트위로 쓸데없이 하루종일 오고가는지, 스트레스 받으며 또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는지, 남을 못살게 굴며 남에게서 못살게 구는 것을 당하는지 또 소비하며 또 소비를 당하는지… 신께서 주신 하사품을 무시하면서… 그리고 그것의 실체를 망각하지는 않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