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노력, 시간을 쏟으며
불도저처럼 돌진할 때의 맛
이것이 인생의 참 맛
나는 미쳤었다. 창가로 간다.
틈만 나면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본다.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구름이 얼마나 꼈는지, 바람이 부는지, 햇빛이 있는지 없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창문을 열고 날씨를 확인한다.
퇴근할 때 까지 틈만 나면 창가로 간다.
나의 취미는 테니스.
테니스 라켓을 잡은 지 10여 년 정도 되어간다.
땅을 밟으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노란 공을 시원스레 칠때면 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이 함께 날아간다. 이 맛이다.
초보 수준을 넘어서 중수로 가는 실력.
눈만 뜨면 포 핸드 스트로크의 자세 중에 뭐가 잘못됐는지, 백 핸드를 오늘은 꼭 시도 해야지, 스매싱은 어떻게, 발리는 이렇게, 서브는 저렇게 등등.
틈만 나면 하루 종일 테니스 생각이다.
노란 공의 마력이란다.
그런데 노란 공의 마력이 가끔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친구가 골프를 같이 하자고 유혹할 때, 그래도 나는 하얀 공보다 노란 공이 더 좋다고 고집을 부린다.
한 번은 도전이 들어왔다.
하수의 도전은 늘 받는 게 나의 철칙이다.
그래서 날짜를 잡고 몸을 만들어서 그 날을 기다린다.
드디어 결전의 날!
칼을(라켓) 챙겨서 전장으로 가는 마음으로 코트로 향했다.
그런데 느닷없는 한 통의 전화에 고민을 한다. 둘째 아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한다고 한다.
아! 테니스냐? 아들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아들을 병원에 데려 가라는 말로 전화를 끊고 매정하게 코트로 향한다.
아! 테니스가 뭔지!
결국 도전에 졌다. 집사람의 원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벌을 받았나 보다.
도전에 지고 돌아오면서 생각한다. 미쳐도 제대로 미치자!
테니스가 아무리 좋아도 아들이 소중하지 않은가 말이다.
언젠가는 테니스 엘보우가 왔다.
펜을 들지도 못하고 수저를 들지도 못할 정도로 심했다.
사방팔방으로 용하다는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주사 맞고, 침 맞고, 뜸 뜨고….
정말 열심히 찾아다녔다. 오로지 테니스를 치고 싶다는 일념으로 침 맞고 조금 나은 것 같으면 나도 모르게 테니스장으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팔꿈치의 끊어지는 고통도, 근육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도 무시한채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집에 와서는 파스 붙이고 진통제 먹고 끙끙 앓는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내가 미쳤었다.
이제는 제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
가족의 소중함을 느껴서인지, 내 팔이 아파서인지, 실력이 늘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줄어든건지.
하여튼 제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
하지만, 무언가에 빠져 있을 때가 가끔은 그리울 때가 있다.
나의 모든 열정과 노력, 시간을 쏟아 부으면서 천지분간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돌진할 때의 맛.
인생의 참 맛. 이 맛 인데….
이제는 이것 저것 가리고 구분하고 타협하고 그저 둥글게 둥글게.
우리네 인생처럼 나이가 들면서 현실에 적응하고 순응하고 길들여지고….
이것이 세상사는 이치일수도 있겠지만 가끔씩은 아무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가 뭔가에 미쳐있을 때가 좋았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