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守破’를 바탕으로
은퇴전엔 꼭 ‘離’에 도달하리라
매일 매일 최면을 걸어본다
흔히 듣는 속담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든가 ‘모든 학문은 철학으로 통한다’(그래서 영어의Ph.D 는 분야에 관계없이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 똑같이 주어진다)든가 어느 영역이든 경지에 이르면 ‘도 통하다, 득도했다’라는 것들이 있다. 수없이 들어 왔던 표현들인데 요즈음 들어 그 깊은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공부는 물론 좋든 싫든 여러 가지 운동이나 잡기를 끊임없이 접하거나 배울 기회가 생기게 된다. 불혹을 넘기면서 딱히 할만한 운동이 무얼까 고민하던 중에 부상이 많은 권투나, 유도, 태권도 등 격투기보다는 언젠가 여건이 되면 꼭 해보리라 마음 먹었던 검도를 시작한지 어느 새 7년이 됐다. 뭘 하든지 7년 정도 하면 웬만큼 잘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귀에 따갑도록 듣는 소리가 ‘기검체 일치’가 안 된다는 것이다.
기검체 일치는 검도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氣)란 기력과 기합을 말하며 검(劍)은 죽도로 타격하는 것, 체(體)는 몸과 발의 움직임과 몸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이 세 가지가 타이밍에 맞게 일치가 돼 격자하되 반드시 뒷발이 앞발 쪽으로 따라 붙을 때 기, 검, 체 일치라고 말한다. 기합과 죽도 그리고 몸이 하나가 돼 공격할 때를 말하고 이것이 일치되지 않으면 한판으로 인정될 수가 없다. 고수들한테 이런 지적 받으면 한 마디로 기운이 쭉 빠지고 자책감에 시달린다. 보기에 멋있는 기술이라 나름대로 열심히 익혀 한번 써 먹었는데 기검체 불일치로 한판 인정을 못 받으면 유단자로서 정말 민망하다. “내가 지금 몇 년째인데 아직도 기본이 안 돼 있나?"
또 호면 안에 항상 착용하는 면수건에 수파리(守破離)가 적혀 있는데 검도 수련을 하는 단계를 일깨워 주는 말로서 1) 守란 : 선생의 가르침을 잘 지키고 그 가르침에 조금이라도 벗어남이 없이 수련하는 것이다. 딴 곳에서 하는 사람의 것이 멋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거나 딴 선생의 기술에 대하여도 동요함이 없이 자기 선생의 가르침만을 따라 수련하는 것이다. 2) 破란: 자신의 도장에서 일사분란하게 정진해 오랫동안 수련을 쌓은 후 선생의 허가를 얻어 타 도장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연습경기를 가지면서 지금까지 자기가 배워온 것을 파하되 지금까지 자기가 공부한 것을 전부 버리는 것이 아니며 자기가 닦아온 것에 구애받지 않게 자유자재의 연습, 단련을 하는 것이다. 3) 離란: 守,破의 단계에서 자신의 선생이나 다른 선생 혹은 선배로부터 배운 것을 떠나서 자기의 독특한 검도를 하는 단계를 말한다. 여기저기서 배운 것을 참고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기초로 하되 그것을 고수하지 않고 그 체험에 기초해 그 이상의 높은 수준의 자기만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해 나아가는 것이다.
참, 무릎을 치고 공감할만한 가르침이 아닌가? 격렬한 운동 뒤에 비오 듯 흐르는 땀을 식히며 묵상을 하는 동안 스스로에게 자문을 해 본다. 치과의사 면허 받은지 어언 26년, 나는 과연 얼마나 기본에 충실하고 있나? 수 십 년 세월이 흘렀건만 전문인으로서의 나는 어느 단계일까? 守일까? 破일까? 혹 자만이나 아집에 빠져 離를 행하고 있지는 않는가? 守없는 離란 모래성일 것이요, 평생동안 守破에만 머물러도 한심한 우물안 개구리로 전락할 것이다. 탄탄한 守破를 바탕으로 은퇴하기 전엔 꼭 離에 도달하리라 매일 매일 최면을 걸어 본다.
기본에 충실하라! 그리고 떠나라! 배움의 단계는 어디나 다 똑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