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지난 3월11일부터 18일에 걸쳐 있었던
「평화와 화해를 위한 건치 베트남 진료단」의 일원으로서 참가하였던 제가 미라이 양민
학살 기념관과 푹빈 마을에서 느낀 것을 시로 옮긴 것 입니다.
34년 전 베트남 중부 썬틴 현의 작은 마을 푹빈에서 당일 한살배기 아기를 포함한 68명의
양민이 한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특히, 응웬 리 할아버지는 가족 9명을 당일
잃었습니다. 그들의 명복을 삼가빌며 이 시를 바칩니다.
베트남 진혼가
- 푹빈 마을의 응웬 리 -
그대들 어디에 있는가
사탕수수밭 서걱이는 바람
예전과 다름 없는데
마당가에 내리는 햇살도
예전과 다름 없는데
그대들 정녕 어디에 있는가
삼십여년 세월도
나를 속이지는 못해
푹빈의 어느 길
모퉁이를 돌아서면
붉게 젖은 얼굴들
와락 할키며 달려든다
우리 아부지 꼬부라진 허리
곧추세워 바지자락 꿰다말고
그냥 가슴으로 총알받고..
우리 엄니 죽은 자식 끌어앉고
울음도 채 못지른 체
머리에 총알 맞고...
내 동생 그 불쌍한 놈
풀풀 날리는 알량미밥
한입 가득 넣은 채
밥 먹다가 총을 맞고..
고된 노동에 손발은 터졌어도
풋웃음 고왔던 내 색시
아랫도리 벗겨진 채로
아랫배에 총알박고...
아장걸음 한살배기
눈에 넣을 우리아기
엄마 품에 안긴 채로
엄마 피로 눈 감기우고..
남조선 군인들아
대체 무슨 원한 있어
우리 가여운 아홉식구
하룻 날에 앗아갔나
어찌 나만 홀로 두고
그렇게도 앗아갔나
혼자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게 아니라
녹슬은 사슬을 끌며
칠흑과도 같은 지하 계곡을
헤메이는 것
역사는 그 날을
이야기하려 하지않고
이제 내게 남은 것은
고랑 패인 주름
휘고 갈라진 손발 뿐
그리운 얼굴들, 어디에 있는가
정녕 어디에 있는가
흙 먼지 일구며 단숨에 달려와
푹빈의 들녁을 휘저어 놓는
저 바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