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여과 없이
내 모습을 드러내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대학을 입학하고 사진기를 잡은 지도 벌써 만 6년째, 좋아하게 된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각컨대, 학교를 다니면서 남는 많은 공강시간에 나에게 잘 맞는 취미를 찾은 것이 사진 같기도 하다. 특별히 하고 싶었던 마음이나 애착이 가진 않았지만, 평소에 회화나 데생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자연스러웠고, 즐거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장비를 구비해야 한다는 점이나, 사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의 시작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셔터스피드, 조리개수치, ISO감도, 심도, 온갖 사진의 법칙, 인화, 닷징과 버닝, 확대기… 나에게 익숙한 단어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으며, 모든 정보는 인터넷과 동호회, 서적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허무하게 날려버린 필름도 수 십, 수백 통. 버린 시간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힘들게 시작한 사진이 이제나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일 뿐더러, 또 하나의 나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누군가 사진을 하지 말라는 것은 나에게서 내 삶의 일부를 빼앗아 가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도 언제나 그렇듯, 사진을 찍을 때도 언제나 내가 맘속으로 떠올리던 이미지를 손끝으로 잡아내질 못한다. 언제나 포착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머릿속에서만 빙빙 돌뿐 그 찰나를 현실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매순간 포착하는 사진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지긋하게 기다렸다면, 조금 더 기다려서 좋은 빛이 나오길 기다렸다면 하고 생각하며 대부분 찍은 사진을 보며 좌절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조금 더 고삐를 당겨 채찍질을 하지 못할망정 이런 칭찬을 들으며 자위하는 나는 좋은 사진가가 되기는 틀린 모양이다.
하지만 사진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사진은 여과 없이 내 모습을 드러내주는 거울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찍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어떤가를 읽을 수 있다. 사진 찍을 때의 나의 마음과 그리고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내 마음. 어두운 사진이 대부분일 때는 나도 어두운 상황에 있을 때가 대부분이고, 노출을 밝게 한 사진이 많을 때는 즐거울 때가 대부분이다. 또한, 의도하지 않아도 순간 포착된 사진에서 나도 몰랐던 내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기도 하다. 아름다운 사진을 얻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지만 이러한 유희와 취미를 넘어, 나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게 해주는 명상의 도구가 된 사진을 더 이상 버릴 수가 없게 되었다.
사진을 하면서 느낀바가 많다. 내가 그리 사랑하지도, 애태워서 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나에게 너무나도 큰 의미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아마 나는 사랑을 하더라도 이런 사랑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에게 ‘사진’과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한다. 다소 굼뜨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은, 아직도 감정에 휘둘리며 질풍노도와도 같은 시기를 보내는 나이지만, 언젠간 나도 성숙해가는 내 사진처럼, 조금은 조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를 가져본다. 지금껏 살아왔던 중에 잘한 선택이 뭐냐고 물어보면 서슴지 않고 사진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리고 가장 잘못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그것도 역시 사진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에 대한 만족이 높아지고, 내 모습을 더욱 잘 볼 수 있게 될수록, 지갑은 그만큼 가벼워지기 마련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