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아저씨가 치카치카 잘하는지 볼 꺼야 하면서 빠른 손놀림으로 풍선을 접는다. 요녀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잠자리, 기린, 토끼, 강아지, 미키마우스, 갈매기, 앵무새, 꽃, 칼, 달팽이, 하트, 사과, 벌, 바니, 거북이, 원숭이
슬슬 이야기를 풀어야 할까보다.
4년전, 많은 연인들이 기대하는 화이트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날이다.
대학로에 거니는 사람들을 모두 짝 짓고 나면 아마도 나 혼자 남을 것만 같다.
난 지금 요술 풍선을 배우러 간다.
볼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힘껏 불어주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없이 늘어날 것만 같은 풍선들이 나를 기다린다.
아마도 서너개 불고 나면 하늘이 노랗게 보일지 모른다.
‘칙칙이’라고 내가 이름 붙인 공기 주입기가 있어 축 늘어져 엉켜있는 이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봉지 가득 들어 있는 풍선을 보고 있노라면 서로 나에게 잘보여 뽑히고 싶어하는 것만 같다.
풍선 입구와 주입기를 잘 맞추어 빵빵하게 만들어 주면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마저 기대감에 부풀게 한다.
시작이 반이다. 끝이 손가락 다섯 개만큼 남으면 입구를 살짝 열어 공기를 빼주고 매듭을 짓는다.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 있으면 풍선을 접기도 전에 풍선 폭탄이 되고 만다. 마치 배꼽 같다.
이쯤 되면 무얼 만들지 머릿속엔 결정되어 있다. 손가락 세 개정도 크기의 방울을 먼저 만든다.
오른손이 요술을 부리는 동안 왼손은 서포트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양손이 척척 맞아 들어가야 애써 접어놓은 풍선이 풀리지 않는다. 여기에 알파벳 C자형으로 꼬아준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 놓은 방울을 살포시 밀어 넣는다. 뻥 ! 웬만해선 터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밑그림은 완성된 셈이다.
손가락 두 개 크기 하나, 세 개 크기 두 개를 만들어 주면 줄줄이 쏘세지처럼 보인다.
크기가 같은 마지막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잘록한 허리를 맞추어 꼬아준다.
다시 손가락 네 개 크기 하나, 세 개 크기 두 개의 방울을 만들고 마지막 두 개를 꼬아주고 나면 마로니에 공원에서 피에로가 만들어 주던 바로 그 푸들 강아지 풍선이 된다.
하지만 여기까지 하고 나면 무언가 어색하다. 꼬리 끝에만 아주 작은 방울이 되게 바람을 적당히 밀어 넣는 고난도의 테크닉을 발휘하고 나면 치과를 찾는 꼬마들의 손은 어느새 키보다 더 높이 올라가 있고 꼬마의 동생은 애꿎은 손가락만 빨면서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요술풍선을 정말 좋아하던 사람이 두명 있다, 한 명은 아빠, 다른 한 명은 그 해 크리스마스에 번개팅을 했던 남자다.
내 가방 옆으로 삐죽 튀어나온 칙칙이를 보더니 무어냐면서 관심을 갖는다. 잠깐 앉아서 몇 가지 요술을 부렸더니 마치 어린아이 같다. 주위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린다. 옆자리에 앉은 미영이, 후배 희라도 덩덜아 좋아한다.
그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대학로를 찾은 사람들을 짝지어보면 홀수로 남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젠 치과를 찾는 악동들을 위해서만 풍선을 접는다. 칙칙이가 없어도 좋다. 에어 시린지로 부풀려진 풍선은 막 뽑아내진 가래떡 같다.
무얼 만들어줄까? 기린아저씨가 치카치카 잘하는지 볼 꺼야 하면서 빠른 손놀림으로 풍선을 접는다. 요녀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접수대에 놓여있는 디지몬 그림에 더 관심이 가는 눈치다. 애써 만든 풍선을 뒤로한 채 디지몬 그림을 받아든 녀석이 엄마 손에 이끌려 치과 문을 나선다. 기린을 만지작거린다. 엄마의 젖가슴 같다.
햇볕이 좋다. 하늘이 뿌옇다. 돌아다녀도 황사 때문에 먼지만 뒤집어 쓸꺼야라고 위안을 삼으며 창밖을 본다.
올해 크리스마스엔 내 요술을 받아 줄 좋은 사람하나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