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 드릴 앞에서
힘 없이 무너지는 야자
밋밋한 육수를 토해내다
나는 밥을 참 많이 먹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밥 두 그릇을 더 먹으니 평균 식사비가 평균 2000원이 더 나온다.
자장면, 짬뽕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간에 기별이 안 가므로 꼭 곱빼기를 시켜야 하며 친구들과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해도 스테이크로는 배가 안차 빵을 예닐곱 개 더 시켜먹거나 다른 사람이 남긴 걸 먹어야 한다.
덕분에 혼자 사는 가계의 엥겔계수가 둘이 사는 부부들 보다 많을 때가 많다.
내가 먹는 것을 좋아 하다 보니 주위에 친구들도 한 먹성 하고, 한 입맛 하는 친구들만 남았다.
이는 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전자 탓이다.
벌써 팔년 전 일이다.
추석이라 고향에 갔더니 아버지가 심각한 얼굴로 이것을 어떻게 먹느냐고 과일을 하나 내민다.
자세히 보니 야자다.
그런데 이것은 좀 이상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코코넛야자 하고는 좀 다르게 생겼다.
어디서 사셨는지 물어보니 마트에서 야자판매코너가 있어서 구입하셨다 한다.
근데 문제는 거의 일주일동안 야자를 먹으려 별수를 다 썼는데 못 드셨단다.
야자껍질을 보니 톱자국 망치자국 끌자국 까지 있다.
나중에는 껍질을 깨기 위해 쇠톱까지 썼는데 안됐다고 하신다.
정말 드시고 싶었나보다.
나도 한번 도전해 보았으나 역시나 무적이다.
하는 수 없이 전동드릴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빌리고 다시 집에 도착해 온 식구들 다 불러 모아 야자에 세 개의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쇠톱으로도 안 뚫리던 야자가 전동드릴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지며 안에 들어있던 야자 육수를 토해냈다.
하지만 한 사람 앞에 한 컵도 아닌 반 컵이 돌아가자 아버지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래도 야자를 먹는다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다들 기대 반 설레임 반 해서 마시는데 갑자기 들리는 아버지의 호통소리 “이게 무슨 맛이야? 무슨 맛이 이래 이거 얼마주고 샀는데” 아버지는 좀더 달콤하고 좀더 화려한 맛 인줄 알았나보다. 사실 이 맛은 시원하지 않은 이온음료를 마시는 것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그런 맛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 다 시원찮은 맛에 실망했을 때 거금을 들여서 산 우리아버지는 분노에 가까운 눈으로 야자를 쳐다보다 한마디 하셨다.
“이거 키우는 나라에서는 이걸 어떻게 먹을까?” “드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