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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2)나가노에서 봄을 만나다/박수희


벚꽃과 목련이 만개한
아랫지방과는 달리
4월의 시가고원은 눈천국

 

“봄에 눈 구경할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을 거예요.”
가이드를 해준 시가호텔의 야마모토 씨가 말을 건넸다. 나가노는 일본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일본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3000m의 북알프스, 중앙알프스, 남알프스 등 고산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하천은 태평양과 동해로 흘러들고 있다.


나가노현 시내를 통과해 시가고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아찔했다. 굽이친 산의 허리가 마치 미시령 고개 같았다. 그 길은 적막했다. 차 한 대의 움직임이 뭐 그리 요란하다고 졸던 새들이 놀라서 날아오른다. 2000m를 올라 시가고원에 도착하니 사면이 눈 덮인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겨울에는 봄의 길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벚꽃과 목련꽃이 만개한 아래 지방과는 달리 4월의 시가고원은 눈 천지였다.

산의 유혹은 절박하다

쾌속 질주하는 리프트를 타고 시가고원의 요코떼이마 산의 정상을 올라갔다.
“쉿!”


야마모토 씨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사인을 보냈다. 미세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이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겨울의 소나타가 보일 뿐이다. 공자는 “겨울이 깊어진 후에야 소나무, 잣나무의 우둑함을 안다”고 했다. 아마 이러한 풍경을 빗댄 표현일 것이다.
정상의 높이는 2305m이다. 일본에서 가장 높다는 3000m의 북알프스산과 후지산까지 일본에 있는 산이라는 산은 다 보인다. 추워져야 산이 잘 보이는데 봄이 다가오는 것을 산이 먼저 느꼈는지 뿌연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그 곳에는 20년 된 Mt. Bakery라는 빵집이 있다. 5월까지는 눈이 녹지 않기에 스키어들이 많이 찾는단다. 한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기에 따뜻한 차 한 잔과 빵을 먹으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터. 빵 집 주변, 은사시나무숲의 신록은 수줍고 또 더디다. 갓 깨어난 은사시나무숲은 희뿌연 연두의 그림자와 같다. 멀리서보면 은사시나무숲의 신록은 봄의 산야에 낀 안개처럼 보인다. 천하에 이와 같은 무릉도원이 없다.


“좋으시겠어요. 이런 곳을 자주 올 수 있으니.”
“아휴, 저희는 눈이 지겨워서 자주 오지 않아요.”
산에서 시가고원으로 내려오는 길, 여전히 적막과 일탈의 유혹이 있다. 삶이 고단하고 세상이 더럽고 마음속에서 먼지가 날릴수록 산의 유혹은 더욱 절박할 것이다. 그 유혹은 흔히 하산 길에 깨어져버리는 몽환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꽃향기를 듣다

 

“시가고원에 봄이 느껴지는 곳은 없을까요?”
“있죠. 평원으로 가면 얼마든지 있죠. 가볼까요?”
야마모토 씨는 차의 속력을 높여 1시간동안 세차게 달렸다. 시가고원의 서늘한 기운이 멀어져갔다. 400년 전에 생겼다는 전통 거리, 호쿠사이에 들렀다. 우리나라의 인사동과 같은 거리인가보다. 기모노를 비롯한 아기자기한 토속품들이 즐비하다. 그 입구에는 100년은 되었음직한 강단한 벚나무 한 그루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일본의 녹차 마셔 봤어요?”
“아니요, 아직.”


“그럼, 차 한 잔 하러 갈까요?”
호쿠사이가 훤히 내다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이내 녹차가 제일 먼저 나왔다. 녹차는 맨 처음 돋아낸 새순을 귀하게 여긴다고 한다. 법경에는 ‘시는 인공의 낙원이고 숲은 자연의 낙원이지만, 한 모금의 차는 그 모든 낙원을 다 합친 낙원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한다. 야마모토 씨는 마지막으로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재촉을 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간쇼인이라는 300년 된 절이었다. 시가고원의 가장 낮은 지대에 있는 곳이어서 일까. 그곳은 완연한 봄이다. 절의 뒷산에 활짝 핀 이름 모를 꽃들과 새들의 지저귐이 감미롭다. 꽃향기는 맡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고 했다. 옛 글에 ‘문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