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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봄의 행복/황윤숙

 

고정된 사진 속에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늘 추억과 함께


기억속 동영상으로 존재

 

오래 벼르다 카메라 한 대를 구입했다. 물론 사진 전문가들이 소지한 플래그십 바디는 아니지만 사진 찍는 실력에 비하면 셔터를 누르는 검지와 눈이 호사한다는 느낌을 주는 적당히 묵직하고 폼 나는 기종이다.
무엇이든지 빨리 결정하고, 일단 결정한 것은 순응 잘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물건 구매를 위해 오래 고민하고 신중하게 그리고 주변의 자문을 많이 받아 골랐던 물건이다.
카메라를 받아 들고 첫 셔터를 누를 때 그 감동은 마치 유년시절 맛있는 솜사탕을 한입 베어 먹는 행복감이었다. 그렇게 카메라를 매일 들여다보고 괜스레 일상의 물건들을 찍으면서 사진 찍으러 가는 날만을 기다렸다.


봄날의 인연이 왜 그리 멀기만 한지 날씨가 좋으면 일이 바쁘고, 여유가 있으면 하늘이 흐리고 그렇게 목련 꽃잎이 하염없이 떨어지고 벚꽃비를 보면서 봄을 보내던 차에 중간고사의 여유로움을 맞이했다.
봄을 느낄 곳을 찾던 중 아침 TV프로에서 고창 청보리밭 축제에 대한 정보가 눈에 들어 왔다. 부지런히 지도를 보고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비가 올 예정이란다. 하지만 한편으로 ‘일기예보가 언제 꼭 맞았나? 틀릴 때가 더 많아’라고 애써 검색자료를 부정하며 기상예보가 틀려주길 바랬다.
그런데 웬일인가 아침에 눈을 뜨니 땅이 젖어 있고 봄비가 내린다. 기상예보는 적중했다. 평상시 오보와는 달리 하필 오늘 적중할게 뭐란 말인가! 습기에 유난히 예민한 카메라를 우중에 들고 다닐 수도 없고 난감했다.


혹시 하는 기대에 전라도에 거주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하니 쾌청하고 오후 늦게나 비가 내린다는 예보란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지라 이번에는 기상대의 정확성에 희망을 걸어본다. 서울을 벗어나 조금 달리니 거짓말처럼 화창하다. 기상대가 오늘따라 참 이쁘다.
붉은 황토밭들을 지나 고창에 도착하니 너른 들판에 끊임없이 연결된 보리밭 구릉이 눈에 들어온다. 산이 많은 우리 땅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지평선이 이어지고 바람 따라 푸른 들판이 물결친다.
풍경에 정신이 팔려 이곳저곳 살피는 중 귓가에 작은 소리 하나가 잡힌다. 그제야 정신 차리고 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보니 보리밭 물결 따라 보리밭이란 가곡과 7080의 유행가들이 들판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입구에 갈래머리 소녀들과 빡빡머리 남학생들이 입었던 70년대 교복을 대여해 주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이곳이 70년대와 무슨 연관일까? 하지만 보리밭 사이를 걸으면서 꼬리를 물며 연상되는 생각을 곱씹어 보니 우리 세대들은 보리에 대한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검사 받던 보리혼식 도시락, 껄끄러운 보리밥을 싫어했던 나를 위해 유독 정성스레 보리를 거친 독 뚜껑에 문질러 삶아 내시던 어머님, 부엌에 매달려 있던 구멍이 숭숭 난 보리 광주리, 갈 곳 없었던 옛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그리고 외삼촌의 보리피리 소리 등등 그래서 교복을 빌려 입고 보리밭 사이 길에서 추억의 사진들을 찍나 보다. 


추억을 잠시 뒤로 하고 사각의 뷰파인더를 통해 이것저것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보리밭 지평선, 간간히 피어있는 유채꽃 그리고 보리밭 사이 좁은 길을 걷는 연인들의 모습을 담으면서 바람과 바스락 소리, 보리들의 수줍은 흔들림을 담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난 안다 고정된 사진 속에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늘 추억과 함께 기억 속 동영상으로 존재할 것이란 것을….
오늘 사각 속에 정지된 화면으로 아름다움을 담아 가지만 보리밭 속에서 어머님의 보리 문지르던 손을 기억하고, 보리피리의 노래가 들리듯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오늘의 사진을 펼쳐보면서 이 언덕의 따뜻한 봄 햇살과 볼을 스치던 바람 그리고 흔들리는 아름다움 보리물결을 기억할 것이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늘 시간이 없다 한다. 내게 시간이 주어지길 바라기보다 주어진 시간을 쪼개어 봄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