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컨데 저는 활자중독자입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그 어떤 책이건 닥치는 대로 읽어대는 남독자(濫讀者)에 가깝습니다. 하다못해 신문을 봐도 광고면도 빠짐없이 읽어야 속이 편하죠. 덕분에 화장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문제이긴 합니다만.
시간만 나면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을 봅니다. 요즘은 컴퓨터에서 보라고 E-book이란것도 나왔더군요. 그냥 파일형태로 모니터에서 읽으면 됩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도통 자리에서 일어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예전부터 맘에 두고 있었던 답사라는걸 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당연히 지리산입니다. 지리산은 20대 초반 객기로 몇 번 도전했다가 혀 내민 강아지 꼴이 되어 포기도 몇 번 한 기억이 있어 늘 가슴한구석에 남아있던 곳이었지요. 하도 많이 읽어 대충 외울 지경이 된 박경리선생의 ‘토지"를 가슴에 두고 떠나보니 등산을 염두에 두고 갔던 때와는 많이 다르더군요. 일단 산에 왔으니 머리도 맑아지지만 친구들 혹은 지인들과 왔을 때에 느꼈던 등산에의 압박도 없으니 마음도 편합니다.
어릴적 여러 매체에서 들었던 뱀사골을 전 뱀이 나올법하게 으스스하고 음침한 계곡인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 들러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멋진 계곡이더군요. 뱀사골의 산행로도 산책에 가깝게 경사도 심하지 않고 가볍게 걷기에도 좋습니다. 과연 토지의 배경이 될만한 곳이라 생각하며 이리저리 보다보면 소설 속 최참판댁도 가깝고 그 풍광좋다는 섬진강도 바로 지척이라는게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피아골로 가면 연곡사 입구 쪽의 다랭이논도 장관입니다. 외국에만 있는줄 알았던 계단식논이지만 그래봐야 논 하나에 몇평 되지도 않는 곳이다. 게다가 산골짜기 천수답인지라 비가 안오면 그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는 그런 논입니다. 그러나 농부의 땅에 대한 갈망과 욕심은 과연 대단합니다. 박경리선생이 차라리 공중배미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논두렁이 그야말로 키보다 더 높게 수직에 가깝게 곧추세워 한치라도 더 땅을 확보하고자 하는 마음을 엿볼수 있습니다.
친김에 연곡사엘 가봅니다. 절집이야 한국전쟁때 불탄걸 다시 지어놓은 곳이라 고색이 비껴있어 좋은 곳도 아니지만 그 유명한 북부도와 동부도가 있어 팍팍한 다리를 주무르며 올라가게 되는곳입니다. 다 아시는 바지만 부도(浮屠)란 고승의 입적시에 다비식을 치르면 나오는 사리를 보관하는 일종의 탑입니다. 본래 의미의 탑이 석가모니의 사리를 보관했던 것과 유사한 의미지요. 그 부도중 최고의 조형미를 자랑하는 곳이 연곡사의 북부도와 동부도입니다. 거의 유사하게 생겨서 하나가 원본을 표절했다고 추측하더군요. 쌍계사, 대원사등도 귀에 익어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딘가에 쳐박혀있는 문학전 집등에서 한번씩 읽어본 곳이라 처음 가봐도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습니다.
이태선생의 남부군이나 조정래선생의 태백산맥등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소설들중 지리산이 등장하지 않은 소설은 오히려 드뭅니다. 직접 지리산에 가보니 왜 이산이 그리도 중요하고 왜 이 산이 그리도 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지 대충은 이해가 되더군요.
화개장터야 이미 널리 알려진 관광지에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김동리님의 역마에서 주인공인 성기가 역맛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떠나던 곳이라 남다른 감회가 있습니다. 떠나는 장돌뱅이의 뒷모습을 그곳에서 생각해보는 것만한 문화적 사치가 또 있을가 싶습니다.
통영에서 멍게비빔밥을 먹고 오는 것도 좋지만 김약국의 딸들을 기억해보며 머릿속에서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관통하는 명작을 생각해보는 것도 훌륭한 답사이기도 하지요.
주도 빼놓을수 없는 답사처입니다. 중학교때 수학여행으로 가보곤 일절 발걸음이 가질 않던 경주는 그야말로 천년고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곳입니다.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고 지나가며 훑어봤던 첨성대의 우아함이나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찰인 불국사, 석굴암에 홀로 앉아계신 부처님의 아름다움은 중학생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