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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9)취미와 생활/정종구

참으로 오랜만에 샤프를 써본다. 학창시절에 펜대로 500원짜리 노트에 낙서처럼 지워가며 썼던 습작노트 이후에 ‘공책"에 이렇게 글을 써보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비록 전달은 컴퓨터로 타이핑으로 워드로 메일로 향기없이 전해지겠지만, 부족한 글솜씨를 적어내려면 형형색색 모니터와 이제는 손에 더 익은 키보드보다, 약간은 누런 공책과 까만색 마이크로 샤프가 없던 내 글솜씨까지 더 적어줄지도 모르겠다.


중학교때 학생주임이었던 옆반 국어선생님이 말썽부리지 말라고 특별활동을 문예반으로 들게하고는, 담배 냄새가 눅눅한 교사 휴게실에서 일주일에 한편씩 시를 써보라 했다. 싫지 않았다. 글을 쓰는게 재미있었고, 내 생각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는 기대감이 재미있었다. 밤에 쓴 시는 다음날 다시 읽기 민망할 정도로 유치했지만, 이런 저런 글귀들이 모여 새로운 글이 써지곤 했다.


지금은 없겠지만 소년동아신문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게 되어, 처음으로 조회시간에 단상에서 교장선생님 얼굴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기도 했었다. 수업 빼먹는 재미에 이런 저런 대회에 나가서 글이 안 써져 제출조차 못해보기도 하고, 간간히 입상도 해보았지만 주제를 던져주고 학생다운(?) 글들을 써야하는 대회에서는 별로 재미를 보진 못했다. 어쩌면 그때 사춘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구속받는게 싫었었고, 규칙안에 지내는게 싫었느니 말이다.


글은 주로 내 마음대로 적었다. 국어선생님이 ‘나중에 니가 시인이 되면, 낮술 먹고 쓴글 마냥 글이 해롱대니 필명을 오주(午酒: 낮술)라 하면 되겠다. 이름도 정종구니 정종 술을 아홉잔은 먹고 써야겠지." 그말을 들으니 정말로 시인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께 시인이 되고 싶다 했더니 ‘그저 취미로만 하거라. 시인은 배고픈 직업이니, 네가 다른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반대하시는 마음을 느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일부러 글을 쓰지 않았다. 더러 연애편지를 쓸 때 유치한 글귀들을 앞뒤로 잘라내 끄적거렸던 기억은 있지만, 취미로도 시는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미니홈피에 사진을 두고 댓글로 적는 것 말고는 글을 쓸일이 없다.


예전에는 일부러 안 썼지만, 생각해보니 이제는 쓸일이 없다. 부족한 시간을 탓하며, 평생 24년간 잔다는 잠에 일분, 일분을 보탰는지도 모르겠다. 직장인중에 ‘취미"라는 생활을 간직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건강을 위해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는게 취미라면 취미일지 몰라도, 예전에 학창시절에 시를 쓸 때만큼 재미있고 설레지는 않는다.


직장인 밴드 같은 동호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은 많은 직장인들이 부러워한다. 그 만큼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그만큼 여유있게 사는구나 하며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나에게 여유는 있다. 적어도 나에게 일주일에 다만 몇 십분이나마, 옛날 노래 하나 틀어놓고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닌, 내가 쓰고 싶은 시를 적어볼 만한 여유는 있는 것 같다. 그럼 이제 내게는 열정만 있으면 되는 것 같다.


아침 저녁 피곤한 발걸음 속에, 시끄러운 뉴스 속에, 팍팍한 현실 속에 오히려 작은 취미가 색을 잃은 내 열정을 다시 피워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주말이 기다려진다. 아니, 오늘밤 자기전 따뜻한 차 한잔에 책상위 10분이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좋아했고 하고 싶었던 일들 중에 시 말고도 더 많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정종구
오스템임플란트 AIC사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