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돈
진해 허영돈치과의원 원장
충치에서 우주까지(하)
부제-할매와 하숙집 그리고 변소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우리들 식탁은 늘 ‘green field’ 였다. 단백질이라곤 기껏 조개무침이나 고등어자반 정도였는데…… 입에 씹힐 것 좀 먹자고 우리들이 합창을 해대면 할매는 멀건 고깃국을(소나 돼지가 장화신고(?) 건너간 정도의) 아주 가끔씩 차려냈다.
할매 둘째딸은 병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했는데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에 들렀다. 이런 때만큼 할매가 차려내는 식탁은 평소의 룰을 따르지 않았다. 할매는 왕건이가(?) 씹히는 진짜배기 고깃국을 끓였다. 잘 삶은 돼지수육을 숭숭 썰어내기도 했고 어떨 땐 백숙을 푹 고아 죽과 함께 우리들에게 한 마리씩 갖다 안기기도 했다. 고기가 있을 때는 할매는 남몰래 담가뒀던 귀한 약술이나 정금주 (야생버찌종류로 만든 술) 같은 것도 간혹 함께 올리곤 했다. 하다못해 국수나 비빔밥이라도 할매는 재료 아끼지 않고 어쩌든지 맛있게 만들어 냈다.
이럴 땐 딸도 팔을 걷어붙이고 국수꾸미도 만들고 부침개를 부치고 밥과 국을 퍼서 건네며 할매를 도왔다. 그녀는 적당한 키에 하얀 목과 팔뚝, 갸름한 얼굴을 갖고 있었는데 하숙생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사근사근하게 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젊은 남자라면 누구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엔 충분했는데….
이상한 건 하숙집 선배들이었다. 그들은 다들 눈에 뭐가 씌었는지 그녀를 소 닭 보듯 대했다. 게다가 정성어린 그녀와 할매의 특식을 마치 하녀의 시중을 받는 주인같이(?) 당연한 것처럼 먹어댔다.
둘째딸이 오는 날의 특식은 미뤄뒀던 신입생 신고식이라든지 적당한 핑계거리들과(?) 보통 겹쳐지기 마련이었다. 이런 날 우리들은 잔칫날같이 잔뜩 먹고 마셔댔다. 배부르고 얼큰해진 고참들은 즉석 하숙집 단합대회를 연다. 신참을 시켜 모자라는 술을 사오게 하곤 ‘선배는 하나님과 동창이고……’로 시작하는 구호도 외게 하고 서열대로 술도 따르게 해서 하숙집 군기를 꽉 잡는다. (간혹 새벽녘까지도) 이렇게 마시다가 나중엔 다들 취해서 선후배랄 것도 없이 헛소리, 잘난 소리, 거친 소리, 진한 육담을 해 쌓는 난장판 비슷이 되기도 했었다.
둘째딸은 남자들만의 이런 막판(?) 까지도 어지간해선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술잔도 쳐주고 같이 화투도 치면서 화기애애하고 질펀한 그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어쨌거나 이런 자리들이 난 마음에 들었었다. 그래서인지 잔뜩 취한 술김엔지 몇 번째의 단합대회에서 옆의 고참에게 그만 나의 비밀을 뱉고야 말았다.
‘대학시험 치러 왔을 때 예쁜 둘째딸을 보았고 합격하면 이 집에 꼭 들어오겠노라 할매와 약속했고 결국 그걸 지켰노라고……’
고참은 마침 그 자리에 없는 하숙생중 한 선배이름을 들먹이며 그가 큰일 났다고 말은 하면서도 씨익 웃었고 사정을 전해들은 하숙집 고참들도 가볍게 맞장구를 쳤을 뿐 실실 웃는 게 다들 장난조가 분명하였다.
내 중대한(?) 고백치곤 무심한 반응에 난 어리둥절해졌다.
어느 날, 내 옆방 하숙집 동기 태훈이가 담배를 빌리러 와서 슬쩍 물었다.
‘내가 보니께 한번은 누야가(둘째딸) 법대 헹님 방에서 나오딘데?’(의대생 태훈이는 대구 쪽에서 왔었다.)
순진한 치대생은 장면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아 처음엔 무슨 턱도 없는 얘기냐며 무시했다.
태훈이가 그러고 간 뒤 며칠 지나지 않았다.
우연히 아침 일찍 내 방문을 열었던 참이었다. (내방에선 마당건너 안방이 환히 보인다.) 할매의 허드레 치마를 겨우 꿰차고는 푸수수한 노랑머리에(원래 그녀의 머리색이다.) 깊숙이 손가락을 넣어 북북 긁으며 잠 덜 깬 몰골로 법대선배 방에서 나와 안방마루를 건너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새벽부터 눈이 마주친 게 뭐 어떠냐는 듯 어깨위로 기지개를 으쓱 추고는 할매방(원래 그녀의 방)으로 당당히 들어가는 그녀는 분명 그토록 사모하던 나의 마돈나 둘째딸이었다.
그제야 모든 게 확연해졌다.
평소에 할매가 툭하면 ‘우리 법대생!’만 외치던 것, 그를 위주로 한 특식들, 그걸 우려먹기(?) 위한 하숙생들의 노력들, 그동안 나의 간절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거부하는 그녀의 분위기 등등.
하숙집에 들어오고 첫 겨울 방학이 시작될 그 무렵, 내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도 하숙집선배들과 비슷해졌다고 기억한다.
이전 치과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삼층에다 이십 평이 채 안 되었다. 마침 두 블록 옆에 누가 빌딩을 새로 지어 올릴 때 한 층을 얻어 나름대로 깨끗이 만들어서 이십여 년 만에 이전개원 했다. 새 건물의 모양은 사다리꼴이었다. 입구에서 제일 먼 오디오실과 원장실을 짜던 치과인테리어소장이 직사각형 부분만 쓰면 남게 되는 자투리공간을 어찌할까 물었다. 나는 원장실내 샤워까지 할 수 있는 화장실을 하나 지어 달라고 했다. 그 자리는 안성맞춤이었고 이렇게 한 층을 알뜰살뜰 다 쓴 새 치과의 넓이는 이전의 세배 반이 조금 넘었다.
간혹 전날 심하게 퍼 마신 날 점심쯤, 문을 닫아 진료실에는 들리지 않게 하고 오디오실에서 CD를 크게 틀어놓는다. 이탈리아 팝페라 가수 “Andrea Bocelli"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넓디넓은 원장실을 거쳐 안쪽 화장실에 앉아있는 내 귀에까지 짱짱하다.
마지막에, 온수와 강력모드로 미리 조정된 비데의 무선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난 아주 행복한 기분이 된다.
새 치과의 원장전용 화장실은 무척 쾌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