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잘 버는 치과의사, 돈 못 버는 치과의사
병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제 정도 나이에는 저녁 먹고 적당히 일찍 들어가야 집에서 대우 받습니다.), 진료실에 들러 보았다. 수련의들과 직원들이 진료가 끝났는데도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어느 과 수련의가 오늘 난생 처음 직접 임플랜트를 심어서, 그를 기념하는 파티를 근처 고기집에서 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과거의 구강악안면외과 수련의 등이 행한 집도식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지만, 해당되는 수련의 본인의 기분이야 날아갈 것 같을 것이다.
근관치료를 성공하고 나서도, 치주치료를 성공하고 나서도, 똑같은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치료 잘 끝냈다고 축하해 주는 선후배와 동료는 없나 보다. 아니, 오히려 필자의 경우, 이런 치료 잘 했다고 치과의사들이 모인 곳에서 이야기하면, “그래, 너는 그렇게 사세요”라는 식의 반응을 초래하는 이야기가 되어 버려, 이런 이야기 자체는 원칙에 입각한, 매우 도덕적인 것이기는 하나, 경제적 현실감각이 결여된, 돈 못 버는 치과의사의 변명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이야기 자체를 지금과 같이, 타고 다니는 외제차와 살고 있는 왕궁 같은 아파트(무슨 palace라는 이름이 붙는 아파트가 많다.)로 성공의 여부를 평가하는 시대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고 몰아 붙이면 할 말은 없다.
요즘은 가끔 공직에서 봉직하는 치위생사 제자들이 강의를 부탁하는 경우가 있어, 심심치 않게 여기저기 다니며 옛 제자들을 만나면서 그 당시의 기억들을 많이 떠올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행복이라면 행복이다. 그 때마다 우리는 왜 이 직업을 택하여 고생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며, 꿈을 가지고 봉사하라고 강의하고 있다. 대다수의 치과의사와 일부의 치위생사에게는 우리 같은 직업이 ‘부’를 축적하는데 도움이 되는 최고의 직업 중 하나인데도 필자의 강의 내용은 전혀 반대이다. 이 직업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일 텐데, 이제는 필자의 아내도 이런 필자의 주장에 동의(포기?)하는 내용이다.
다음은 필자 강의의 일부로, 단편적이나마 다소 시니컬하게 편중된 필자의 가치관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아 첨부한다.
*우리가 봉사해야 하는 이유: 제가 치과의사 국가시험을 본 날은 1983년 1월 몇 일로 기억합니다. 그 때, 저의 집은 빚잔치 일보 직전에 있었고, 제가 도시락을 싸서 시험장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미안해하시는 어머니가 택시 타고 가라고 주신 돈으로 어쩔 수 없이, 잘 모르는 시험장에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택시 기사가 저에게 무슨 시험 보러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사정 이야기를 하자, 그 분은 저를 위해서 2~3분간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 기도내용에는 제가 돈을 밝히는 치과의사가 되지 말고, 봉사하는 치과의사가 되기를 기도해 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봉사를 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준비가 될 때까지 하셔야 하는 게 저와 여러분의 미션입니다.: 제가 예전에 개원하고 있던 지역에 할머니가 40 넘은 아들을 데리고 오셔서 저에게 치료를 부탁하셨습니다. 아들은 수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여, 뇌를 다쳤고 그로 인해 지방에 있는 요양원에 수용되어 있다가, 어쩌다 한 번씩 어머니에게 오면 저에게 꼭 데리고 오셔서 치료를 부탁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손자 손을 붙잡고, 아픈 아들보다 오래 사셔야 하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리 되실 거라고 기도해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