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9번째
마우이섬
박 용 혁
이센치과의원 원장
마우이섬에 가다.
누군가는 그랬다. 하와이 본섬보다 마우이섬이 다시 하와이에 온다면 꼭 머물고 싶은 곳이라고. 굳이 며칠씩 시간을 비워서라도…
이른 아침 본섬에서 마우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기에 모시고 간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계셨던 모양이다. 안 그래도 어제 예닐곱 시간을 비행하고 오셔서 제대로 쉬시지도 못하셨는데 오늘 또 일찍 일어나셨으니 피곤함이 더 하신 거 같다.
“어머니… 오늘 가는 섬이 정말 끝내준답니다… 피곤하셔도 조금만 힘내십시오.”
“이… 그려. 엄니는 안피곤햐… 어여 가자…”
하와이에 와서 충청도 사투리를 들으니 그 기분 또 묘하다.
날씨가 좋다.
본섬에서 마우이섬으로 이동하는 내 창밖으로 대서양의 조각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약 30분 쯤 지나 마우이섬에 도착했다. 곧장 렌터카 영업소로 갔다. 원래는 멋진 컨버터블카를 빌릴까 했지만 어머님께서 불편해 하시니(사실은 비용) 그냥 한국에서처럼 지붕있는 차로 빌렸다. 부푼 가슴을 안고…
첫 걸음은 할레이칼라로 가기로 했다. 10000피트 고도를 차로 몇겹의 구름을 뚫고 한참을 굽이굽이 올라서야 정상이었던 것 같다. 가는 내 멀찍이 보이는 바다가 그리고 섬내의 풍경이 참 아름답다.
드디어 정상이다. 바람이 드세다. 차가 휘청거릴 정도로 드세다. 그리고 춥다. 산밑에서 30도를 오르내리던 것에 비하면 여기 정상은 10도 안팍이니, 게다가 바람까지 한 몫 더해져 체감온도는 영하임에 분명하다. 겨우 밖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대피소로 들어왔을 뿐인데 코끝이 벌겋게 달아오른 걸 보면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뭣도 모르고 민소매티 하나 걸치고 온 외국여성들이 이리 불쌍해 보일 데가…
우리 어머니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신다.
“이야…이야… ” 뭔가 더 하실 말씀이 있긴 하신 듯한데 엄지손가락 하나 치켜 올리시며 그 말씀을 대신하신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니 나 또한 모시고 온 보람을 느낀다.
덩달아 아내와 막내 여동생도 신난다. 어제의 여독이 또 그제의 치과일에서의 고단함이 저만치 물러나는 듯 하다.
또 다시 차를 몰아 산을 내려왔다. 라하이나로 향한다. 마우이에서 또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해 줄 곳이다. 할레이칼라에서의 일출이 있다면 라하이나에선 일몰이 있다. 길을 잘못들어 자칫 섬의 반을 돌고 올 뻔 했지만 다행히 중간쯤에서 차를 돌릴 수 있었다. 하마터면 그 유명한 일몰을 못 볼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신께선 일몰을 볼 수 있게 허락하셨다. 하루 종일 그렇게 뜨겁게 타오르던 태양은 일과를 마치고 저 바다 건너로 넘이를 한다. 숱하게 모인 사람들이 연신 탄성을 자아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이 또한 여행이 준 피로를 말끔히 날려줄 그 곳만의 청량제가 아닐까.
아차! 본섬행 비행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와이에선 과속하다 걸리면 벌금이 쎄다는데 그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비행기 놓치면 원치 않는 마우이에서의 하룻밤을 지내야 하고 새로 비행기표를 사야하고 낼 빅아일랜드로 가기 위해 예약해 놓은 비행기표도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바닷바람을 가르며 마우이 공항에 도착했다. 서둘러 렌터카를 반납하고 수속 밟는 곳으로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찌 그리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던지… 난 사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내와 막내 여동생은 큰 일 날 뻔 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네 명이 비행기에 오르고 나니 바로 출입구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땐 사실 아무렇지 않았는데 곰곰이 한국에 돌아와 생각하니 ‘큰일 날 뻔 한거였구나!’란 생각이 든다.
어느덧 바다는 검정색으로 물들었다. 무언지 모를 두려움이 살짝 엄습해왔지만 내일 있을 빅아일랜드에의 여행을 꿈꾸며 그리고 맑은 바다처럼 펼쳐질 내 앞날을 위해 대서양 한가운데 지난날 힘들었던 순간순간을 한웅큼씩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