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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수필(831)>
"내게 고단한 취미"
장주혜 / 강원도 강릉시 서울치과의원원장

“얘, 네가 보기에 엄마는 영어를 어느 만큼 하는 것 같니?” 나는 순간 아이의 내게 향한 처연한 눈초리를 놓칠 수 없었다. “엄만..., 그냥 보통이지 뭐..., 됐어요? ” 아이고.., 한숨이 나왔다. 아주 옛날부터 취미사항을 기록하는 난에 노상 올랐던 것이 만인의 취미인 책읽기, 음악 듣기, 결혼하고 나서는 거기에 요리가 덧붙여졌다. 하지만 사실은 끼니를 때우기 위해 죽자 사자(?) 하는 경우가 많기에 진정한 의미의 취미라고는 하기 어렵다. 거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외국어 공부가 있다. 그렇다고 몇 개 국어가 유창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하루하루 일과중에 투자하는 시간을 본다면 단연코 취미생활에 하나 끼어 줄만한 일감이다. 내게는. 대학 들어가자마자 내가 투신했던 항목은 남산 등성이에 자리 잡은 독일 문화원에 다니는 일이었다. 괴테-인스티투트라는 너무도 독일다운 이름을 가진 그 곳은 소녀적부터 선망했던 독일적인 낭만이 담뿍 담긴 장소였다. 그 곳에서 나는 비록 상대방이 하는 말은 못 알아듣더라도, 최소한 내가 하고자 하는 뜻은 전달 할 수 있는 ‘Survival German’을 습득했다. 그 후에 독일어란 것이 쓰이는 곳은 지구상에 독일과 그 인접한 한 두 개 국가밖에 없고 그나마 치과의사들에게는 그 독일 땅에 가서도 영어면 충분한데다가 그게 더 높이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십년지기 독일어공부와 과감히 결별했다.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것은 서른이 다 될 무렵이었다. 386세대의 끄트머리였던 나는 토플책과 운전면허시험교본을 들고 다니는 부류를 특정집단으로 여기는 분위기에서 예과생활을 보냈었다. 본과 와서 전공책들과 씨름한 결과 결국 영어는 읽을 줄 만 알고 말하지도 듣지도 쓰지도 못하는 묘한 외국어가 되어버렸다. 영어과목이 없는 드문 자격시험인 국가고시를 본 다음 이틀 후에 함을 받았었다. 끝나고 나이트 바에 갔었는데 음악을 들려주는 필리핀 출신 연주자가 다정해 보이는 미래의 신랑, 신부에게 인사를 했다. ‘우리는 일주일 있다가 결혼할 거예요’ 하고 더듬거리면서 대답할 때까지 전치사와 조동사를 무엇으로 써야 하나를 한참 머릿속에서 굴려야 했었다. 세상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나의 생각도 선회하여 유창한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위대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즈음은 강릉에 정착하면서 늘상 귀가가 늦는 남편의 생활과 맞물려있던 때였다. 남편의 밤일과는 주로 연구실과 회식자리를 오가며 이루어졌는데, 학문과 오락 두 가지 주제에서 배제된 채 유배생활 비슷하게 집안에 갇혀 있는 나로서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은 컸다. 열망인지 오기인지 무엇이 앞섰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영어공부는 아이가 잠든 저녁 혼자서 벽만 바라보고 있는 시간에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저것 접하면서 공부라고는 시작했는데 어째 실력은 조금도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았다. 걔 중 잘 한다고 하는 게 독해였어도, 일상적인 단어로 씌어진 전자제품 사용 설명서를 보고 있자면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던 중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영어 학습 지침서인 OOO책을 알게 되었다. 소위 5단계로 나뉜 학습과정을 소개하는 이 책의 내용은 survival german을 배울 때 공감했던 부분과 많은 데에서 일치했었고 그 날로 당장 1단계 과정에 입문했다. 2단계를 거쳐 3단계를 마쳐야 비로소 재미가 좀 있을 듯 싶어 보이는 영화 보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자기 진단 항목중 하나인 ‘이제 영문으로 된 글을 보아도 더 이상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지 않아요’ 에 해당이 되어야 진도가 나갈 수 있었는데, 그것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조금만 훈련(?)이 소홀해지면 다시 머리가 아파진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어쨌든 교재로 쓸 영화를 일찌감치 골라두고 그 날이 올 때까지 매진했다. 영화 ‘You’ve got mail’은 교양있는 서점 주인들이 티격태격하는 로맨틱 코메디로 속어가 거의 나오지 않아 적당하다는 게 이미 4단계에 도달한 선학들의 평이었다. 하도 여러 번 보아 대충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눈치로 때려잡을 무렵 대사를 받아 적기로 맘먹고 연필을 쥐었는데, 첫 장면에 맥 라이언의 남자 친구가 신문을 들고 주루룩 말하는 부분에서부터 하나도 잡히질 않았다. 뒤로감기, 재생을 거듭하다 이러다는 DVD플레이어 거덜나지 하는 생각에서 이번에는 영어 교육용 영화 CD를 구입했다. 같은 영화를 장면마다 나누어 놓아 구간 반복 재생도 되고 대사도 따로 간추려져 있었다. 병원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틈틈이 보며 받아적기를 하는데, 줄곧 깨알만한 cavity를 노려보며 일하다가 짬짬이 남는 시간마다 모니터 속의 주인공 입 모양을 쏘아 보고 있자니, 눈이 침침해지는 게 부리나케 LCD 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