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에 문 것은 순대가 아닌 뇌신경의 어느 한 가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즈음은 눈물이 마른 듯 싶다.
싱숭생숭한 기분에 젖어 찔끔거리다 만 적은 있는 것 같은데 눈물에 소리를 더해 울어 본 적은 요사이 없었다.
얼마 전 좀 서운한 일(?)로 눈물을 보인 아내의 얼굴이 지난날 엄청난 양의 눈물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1990년 내가 작대기 3개 상병계급장을
달고 포병대대에서 사격훈련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때 나는 무선 통신병이었고 몇 시간 후에 있을 야간 포사격을 준비하기 위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임무는 산허리 중간쯤에 위치한 지름 10m의 표적에 불을 지피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등에는 무전기를 메고 양손에는 불을 지피는데 심지로 쓸 걸레 비슷한 것들을 들고 불발탄이 널린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해질 무렵, 커다란 표적 위에 올라서서 노을 빛에 물든 들판과 먼 산을 바라보노라면 군대생활의 답답함이 심호흡 한순간에 사라지곤 했다.
그날, 표적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등에 맨 무전기가 칙칙거렸다. 나에게 임무를 관두고 부대로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지금 야간사격표적을 만드는 일 외에 다른 중요한 일이 없을 듯 싶었지만 복귀하라는 다급한 무전에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장비를 동료들에게 넘기고 산 아래로 뛰듯이 내려오면서 부대에서 나를 부른다면 할아버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일이 아니라면 이런 식의 부대복귀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니나 다를까 내 불길한 생각이 현실로 나타났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특별휴가를 받아 들어선 고향집.
마당 곳곳의 모닥불과 상복의 부모님, 그리고 바람에 펄럭거리는 하얀 천막. 뭔가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이거 영화 아냐?’라고 순간 생각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영정에 절을 올리면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했다. 그런데 나를 그리고 아껴주시던 할아버지 영정에 절을 올리면서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눈물이 말라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흘리고 싶었지만 웬일인지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충혈된 눈과 찔끔찔끔 쥐어짜내다시피한 눈물 몇 방울이 전부였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보내고 부대로 복귀했다. 순대와 통닭 그리고 담배 한 보루를 챙겨 일찍 부대로 들어갔다. 이른 복귀여서 위병소를 통과한 후 바로 내무반으로 들어가지 않고 평상시에는 근무자가 없는 대공초소에서 시간을 때운 후에 내려갈 생각으로 부대 내 산속으로 들어갔다.
멀리 저수지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을 향해 앉아 아직 온기가 남은 순대를 하나 입에 물었다. 순간 눈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폭포수 쏟아내듯, 어떻게 주체할 수 없이… 선명한 할아버지의 얼굴! 실패한 입시! 가슴 아픈 첫사랑! 도망치듯이 들어온 군대!
그리고, 그리고…너무도 푸른 하늘.
내가 입에 문 것은 순대가 아닌 뇌신경의 어느 한 가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해가 기울어져 갔고 귀대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 올 수가 없었다. 몸을 일으켜 세울 때마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일어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귀대시간을 넘기고 들어선 내무반.
퉁퉁 부은 내 눈을 보고 누구도 왜 늦었냐고 묻지 않았다.
이제 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할아버지 묘소주위의 나무들은 나의 자질구레한 한숨과 눈물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을 가려주는 듯하다.
실패한 입시는 그 후 정리가 되었고, 가슴아픈 첫사랑은 두 번째 사랑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하였고, 도망치듯이 들어간 군대는 세상을 더욱 열심히 살아가도록 힘을 주었다.
그때 푸른하늘아래에서 푸른군복 위로 흘렀던 그 눈물은 할아버지께서 주신 growth hormone 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