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바람과 사투 끝 한강 윈드서핑 성공하니
격렬한 전투서 승리한 군인처럼 만족감 들떠
1. 현실
4월 23일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윈드써핑 경력 1년 밖에 안 되는 내게는 무리야" 하고
집에 있는데 스피드클럽의 양 사장은 빨리 나오라고 난리다. 뚝섬 윈드써핑장에 도착해보니
한강은 심한 바람에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막 세일을 접고 들어온 박선배는 내게 무리라고 말린다. 아직 쌀랑한 강물, 그 전날 김
선배가 학생 때 조정부에서 초봄의 쌀쌀한 강물에서 있었던 사건을 들먹이며 말리던 말이
떠올라 불안해 지면서도 이미 몸은 본능적으로 한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한강물 위의 일엽편주에 몸을 세웠으나 팔 힘만으로는 세일을 들고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 모진 바람은 어느새 나를 잠실대교 근처까지 끌고 갔다. 바로 앞에서 구조
모타보트가 써핑을 포기한 윈드써퍼와 장비를 태우고 지나간다.
바람은 점점 거세어지고 오기로 버티는 것도 역부족, 세일을 강기슭에 대고 얕은 강바닥을
걸어서 장비를 질질 끌고 출발점쪽으로 가고 있는데 몇 년 경력의 최원장이 근처까지 와서
뭐라고 코치를 한다.
하지만 거센 바람소리에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도 다시한번 강 한가운데로 나아가
바람과 사투를 벌여 보는데, 한참을 헤매다가 감을 잡아 체중을 완전히 세일에 싣고 나니
세일은 맹속력으로 출발점을 향하고 있었다.
그 때의 풍랑속의 강물 위를 미끄러져가는 느낌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윈드써핑을 해 본
사람들 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클럽하우스로 들어가니 동료회원이 이 바람에
어떻게 자력으로 돌아왔냐고 놀라고 있었다.
약 2시간여 바람과의 싸움의 기억은 너무나도 리얼하여 시간이 지나도 넘실거리는 한강물 위
풍랑 위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 있었고, 격렬한 전투에서 승리한 군인처럼
자신감과 만족감에 들떠 있었다.
2. 가상현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초반 한반도의 상황은 가히 풍랑 속이다. 지식과 부의
향방이 씨뿌리기 전 밭 뒤집기 하듯이 혼미하게 뒤섞이고 있다.
나보다도 6년 후배 뻘 되는 큰 코스닥 기업 사장은 내게 "형님 저도 이 바닥에서는
구세대라구요" 한다. "소익부 노익빈"이란 말은 이제 진부한 말이 될 정도로 젊은 계층으로
부와 지식이 집중되고 있다.
더 이상 학벌이 좋은 직장을 보장하지도 않고, 어떤 직장이 좋은 직장인지의 개념도 많이
바뀌었다. 더 이상 큰 회사가 강한 회사가 될 수 없고, 작은 회사가 큰 회사를 적대적 합병을
하는 예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21세기형 기업은 내부에는 비전과 추진력을 가진 소수집단만이 있고 더 큰 외부회사에
아웃소싱을 하는 형태라고 한다. 벌써 미국에서는 같은 분야의 온라인기업의 자산가치가
오프라인기업을 앞지르는 예가 속속 등장하고 있고, 신세대 중에는 현실의 자아보다 온라인
상의 자아 (아바타)에 더 비중을 두는 사람들도 많다.
아들 핑계 대고 실은 내가 해보고 싶어서 산 플레이스테이션II의 진동 팩이 달린 컨트롤러는
손 안에서 때로는 떨리고 뭉클하고 뒤틀리는 감각을 리얼하게 전달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What is real?” 이란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Real
이란 단지 우리가 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을 뇌에서 전기적 신호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고.
3. 맺음말
아마존 비즈니스부문 베스트셀러 1위인 “Who moved my cheese?”라는 책에서 Spencer
Johnson은 안주(安住)라는 감미로운 유혹과 변화라는 험난한 여정을 비교하면서 변화는
두려움을 동반하는 대신 우리를 더 새롭고 좋은 곳으로 인도한다고 말하고 있다.
서기 2000년 봄, 현실이건 가상현실이건 풍랑 위에 한번 서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