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
고(故) 이춘근 선생님 10週忌
선생님의 ‘큰 사랑’아직도 생생
그리운 선생님, 보고싶은 우리 선생님
저희들과의 이 세상 인연(因綠)을 접으시고, 영원한 천상(天上)의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지도 어언(於焉) 10년이 되었습니다. 유수(流水)같은 세월이라 했던가요, 꼭 10년 전 선생님 댁 안방 베란다에서 그것이 마즈막인줄도 모르고 몹시 어려워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물끄러미 뵈온 것이 벌써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며칠 후에 위중(危重)하시단 전갈을 받고, 병원중환자실에 찾아간 저는, 운명(殞命)하시기 바로 몇 시간 전이였지요.
“선생님, 선생님, 종원입니다”하고 부르짖는 제 목소리를 알아들으셨는지 무겁게 감으셨던 눈꺼풀을 파르르 떨으셨던 모습이 10년의 세월을 거슬러, 마치 엊그제 일이었듯 저희 기억속에 선명(鮮明)하고 생생하게 남습니다.
선생님, 참으로 다시 뵙고 싶은 선생님! 저희들에게 베풀어주셨던 선생님의 그 사랑과 그 가르치심이 참으로 컸었기에 적잖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희들 마음과 마음속에서 이렇게 큰 그리움으로 남아, 오랜 세월동안 기억되나 봅니다. 소한이 지난 지금 서울은 몹시 춥습니다. 멀지않아 따뜻한 봄이 가까이 온다는 징후겠지요.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생전(生前)의 명성(名聲)을 남긴다”고 했던가요.
선생님은 비록 이 세상엔 안 계시지만, 생전에 이룩하신 큰 업적으로 말미암아 명성을 나기에 충분하리만큼 큰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불민(下敏)하기 짝이 없는 미련(未練)한 저희들은 선생님의 생전 그 크신 공적(功積)을 쉽게 잊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사람의 치의학도로서, 구강외과 학회장으로서, 대학운영의 책임자로서 영원히 빛날 수밖에 없는 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예컨대
1)우리는 선생님의 출중한 연구 결과로, 치과의사로서 우리 대한민국의 제1호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하셨다는 선생님의 자랑스러운 연구업적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2)우리는 선생님의 평생 전공이셨던 구강외과 학문과 대학발전을 위해서, 교통사정이 불편했던 1950~60년 당시에 전국을 순회하시며 학술강연과 각 시도지부 결성에 혼신의 노력을 주(注)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추도사를 낭독하는 저 자신도 그 당시 선생님을 모시고 전국을 따라다녔었지요. 그랬기에 오늘날 우리 학회가 이마만큼 세계적인 학회로 발전할 수 있는 저력의 초석(礎石)을 놓으셨음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살고 있습니다.
3)1950~70년. 대학학사행정의 책임을 맡아 우리 대학의 소공동시대를 마감하고 연건동시대를 개척할 때에도, 선생님 특유의 그 리더십을 발휘하시어 의외로 많은 나라 예산을 확보하시어 우리 대학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음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살고 있습니다.
4)그밖에도 선생님은 “TTC 등 학생무의촌 봉사단을 이끄시고 봉사활동을 평생하셨고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던 분이시기도 하셨습니다.
“나무에 올라 그 뿌리를 알렸다”고 지금은 저희들이 불민(不敏)하고 미련(末練)해서 그 뿌리의 근원을 모르고, 선생님의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며 살고 있지만, 선생님이 이룩해 놓으셨던 그 큰 업적은 대학에 남아, 오늘을 살고있는 후학들에게 길이길이 빛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월이 더하면 더할수록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아 가슴속에 더해지는 연유(綠由)가, 아마도 선생님이 이룩하신 업적과 저희들에게 베푸셨던 사랑이 너무나 크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자를 바라보며 말없이 웃고 계시는 인자한 모습에서, 선생님의 큰 사랑은 지금도 아직 식지 않고 저희들 가슴속에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한번만이라도 다시 뵙고 싶은 그리운 우리 선생님,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영생(永生) 복락(福樂)누리소서.
2011년 1월 6일
문하생 김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