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내게 전화한 이들은 뜬금없이 전해주는 낚시꾼 얘기며 막 돋기 시작한 새싹 얘길 들어야 한다.
다른 날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다섯시 삼십분.
오늘 나를 깨운 건 알람시계 대신 맞춰 놓은 핸드폰의 배터리가 방전되는 소리다. 아직 일어날 시간이 되려면 한시간 남짓은 남아 있건만 작은 소리에 예민한 나는 깬 잠을 다시 다스려 얻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금방 단잠을 포기할 수 있는 건 늘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 하라던 친정어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사는 까닭이기도 하고 유난히 밤잠없던 세 아이를 삼년터울로 키우다 얻은 수확이기도 하다.
집안에서 뜻밖에 공짜시간을 얻게 된 날은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일을 하기로 정해 두었다. 대개는 미뤄둔 채 방치하던 집안일들...
책장의 묵은 먼지도 털어내고 갑자기 꾀죄죄해 보이는 부엌살림들도 윤을 내준다. 쌓아둔 사진들을 꺼내서 정리할 즈음이면 짧다고도 길다고도 하지 못할, 내 살아낸 삶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처간다. 그러다보면 출근길은 으레 다른 날보다 더 서둘러야 하게 마련이지만 마음은 풍요롭기만 하다.
종종 비슷한 여유를 얻는다. 저녁 모임이 갑자기 취소될 때, 만나기로 한 친구가 갑자기 급한 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고 전화했을 때, 언제든 돌아보기만 하면 할 일이 산더미처럼 쟁여있지만 저녁 무렵에 그렇게 얻은 시간은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서만 쓰기로 한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는 내가 좋아하는 헤즐넛 커피향과 침묵에 가까운 낮은 클래식 음악이 있다. 어떻게 운영되나 싶을 정도로 갈 때마다 한산하지만 그래서 더욱 좋은 그 공간을 나는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가끔 조금 시간이 많다 싶으면 고집쟁이 아저씨의 분재원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건 팔지 않아요!" 분재원에 들어선 나를 본척만척하며 자기 일에만 열중하다가 근사한 당단풍 분재를 보며 이런 건 얼마나 하냐고 묻는 내게 처음 그 아저씨가 퉁명스럽다 못해 화를 내다시피 던진 말이었다.
놀라 돌아서며 속으로, 해송도 아니고 당단풍 갖고 뭘... 투덜거렸지만 그렇게 고집스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멋스러움을 나는 사랑한다. 아무 말없이 둘러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천정높은 분재원... 그 곳에도 아늑한 무언가가 있다.
내가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내게 전화한 이들은 뜬금없이 전해주는 낚시꾼 얘기며 막 돋기 시작한 새싹 얘길 들어야 한다.
의아해하는 그들의 반응 때문에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진다. 그럴 땐 전화조차도 풍요로운 구속이다.
다시 봄날이다. 괜히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이 계절에 나는 갑자기 찾아들 그 행운을 기다리고 있다. 드물어서 더욱 귀한 나만의 여유는 일상이 바쁘기에 얻어질 수 있는 소중한 축복임을 잘 알기에 녹녹치 않은 삶의 무게조차도 기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