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1회 몽골치주학회-대한치주과학회 교육 워크숍을 다녀와서…
몽골 치주학 큰 열매를 기대하며
지난 9월 23일, 24일 이틀에 걸쳐 제1회 몽골치주학회-대한치주과학회 교육 워크숍 (The 1stEducationalWorkshopofMAPandKAP)이 울란바토르에 위치한 몽골보건과학대학교(Health Sciences University of Mongolia, HSUM)치과대학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워크숍은 이 치과대학 개교 50주년 및 신교사(新校舍) 이전 기념 공식행사에 맞춰 준비하였다. 새로 마련된 치과대학 건물은 총 4층이었는데, 1층과 2층은 진료실이 자리 잡았고 3층과 4층은 강의실, 교수실 및 행정실이 위치하고 있었다. 새로 단장된 건물과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를 보며 기분이 좋아졌지만, 우리의 여건과 비교할 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전 치과대학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구 영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그래도 열악한 야전병원 수준에서 번듯한 국군통합병원 수준으로 엄청난 발전을 한 것이라고 한다.
처음 울란바토르 시내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서울의 1970년대와 2010년대가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심가의 번듯하고 화려한 고층 건물을 제외하고는 하나 같이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이 보일 뿐만 아니라 도심과 인접해 판자촌이 자리하고 있었다. 2010년 몽골의 1인당 GDP는 2050달러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가 2000달러를 넘어선 때가 1983년이었다고 하니 현재 울란바토르의 도시 풍경은 1970년대의 서울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편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는 현대의 엑셀부터 토요타, 닛산 등 다수를 차지하는 일본차와 가끔 보이기는 했지만 BMW를 포함한 유럽차까지 다양했으며 사람들은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개방 정도와 속도에 있어 우리 나라와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안 어울려 보이는 풍경이었다. 사회 인프라와 관련해 워크숍 중 일어난 웃지 못할 사건을 소개하자면, 강의 도중에 곧 정전이 있을 예정이라는 공지가 나왔었다. 아무래도 모델 실습을 위한 실습동영상의 시청이 더 중요했기에 하던 강의를 중단하고 동영상부터 시청하였다. 다행히 전기는 계속 공급되었고 중단했던 강의도 마칠 수 있었다.
몽골치주학회는 2009년 Dr. Ravjaa외 네 명의 창립 회원들이 모여 발족되었다고 한다. 2010년에는 그 회원수가 11명으로 늘었고, 이번 워크숍이 시작되기 전까지 17명이었다고 했다. 대한치주과학회(KAP)와 몽골치주학회(MAP)의 인연은 2009년 몽골치주학회의 회장인 Dr. Ravjaa가 대한치주과학회에 학회 간 교류를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재 몽골에는 보존과 내의 한 섹션으로 치주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50년 전 우리나라 치주과 태동기와 비슷하였다. 학부에는 치주학 강의에 총 여덟 시간이 할당되어 있다고 한다. 몽골의 유일한 치주과 의사인 Dr. Ravjaa는 독일에서 유학하고 치주과 수련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몽골의 치과의사들에게 치주학에 대해 교육해 주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겠다고 대한치주과학회에서 판단하고 이번 교육 워크숍을 개최하게 되었다.
이번 워크숍에는 나와 더불어 이영규 교수 (부회장), 구 영 교수 (총무이사), 신승윤 교수, 윤정호 교수 등 모두 다섯 명이 참가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치과병원에 해외치의학자 초청프로그램으로 방문중인 오스카 교수와 서울치대에 재학 중인 몽골 대학원생의 순차통역으로 진행되었다. 주제는 ‘비외과적 치주치료 (Non-surgical periodontal treatment)’였으며, 치주학 교과서의 내용을 토대로 치주조직의 해부학, 치주질환의 병인론, 치주질환의 진단과 치주조직의 검진방법, 초기 치주치료로서의 스케일링과 치근면 활택술(SRP) 그리고 초음파기구를 이용한 비외과적 치주처치에 대해 강의하였다. 또한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주과학교실에서 지원 받은 실습동영상을 시청한 후 그레이시 큐렛으로 모델 상에서 기구 조작 실습을 직접 해 보는 것으로 워크숍을 마무리하였다.
워크숍 참가자를 모집하면서 몽골치주학회에서는 인원을 20명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다행히 참석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었다고 한다. 참가자들은 워크숍 내내 매우 열정적으로 경청하고 필기하고 질문했다. 기초적인 내용인 해부학, 병인론 및 진단이었던 첫 날 강의에서조차 한 사람도 졸지 않고 강의에 임하는 모습에서 몽골 치과의사들의 배움에 대한 목마름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치과대학의 학장 부인도 치과의사였는데 강의에 참석해 열심히 공부하였다.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모든 연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걱정이자 의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참가자들의 치주학에 대한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였다. 모델 실습을 하면서 보니 그레이시 큐렛을 제대로 잡을 줄 아는 치과의사가 참석자 중에는 한 명도 없었다. 아마도 치주과가 분과되어 있지 않다 보니 기구 사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치주치료를 통해 환자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크나큰 혜택을 이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면서 매일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번 워크숍의 참석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치주학 그리고 치과학의 시작을 상상해 본다. 그 당시에는 우리도 저렇게 마땅한 진료 장비도 또한 진료 기구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의 최신 치의학 지식을 알고 있는 치과의사도 많지 않았으리라. 그 시절 우리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 학생을 교육시키고 환자를 진료했을 것을 떠올리면서, 그 당시 치주학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고생한 선학들의 고마움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 나라의 치주학을 비롯한 치과학문이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수준에 이르렀음을 생각하니 참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하던데 내 경우가 그러한 것 같다. 아울러 이번 워크숍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 지를 오히려 배우고 온 아주 소중한 기회였다.
다행히 워크숍을 마친 후 몽골치주학회에 가입을 희망한 사람이 20명이었다고 한다. 이제 몽골치주학회 회원은 17명에서 최소 37명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며, 치주치료의 혜택을 받는 몽골인들도 점차 늘어나게 될 것이다. 비록 짧은 일정의 자그마한 행사였지만, 우리가 뿌린 치주학의 작은 씨앗이 큰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기도 하고 큰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쉴 자리를 마련해 주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김영성
서울아산병원 치주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