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원점에서 생각해 보자
님은 갔습니다 …
님은 갔습니다. 아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시인 고 한용운 선생이 쓰신 ‘님의 침묵’의 앞 구절이다. 님을 향한 흠모의 마음이 님이 떠난 후에 낙망과 탄식으로 변한 절절함을 느끼게 한다. 이 국민적 명시에 우리 치과계의 현실을 빗대는 것이 선생께는 말도 안 되는 불경죄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현실과 기막히게 들어맞는 것 같아 의아할 정도다.
필자는 지난 치의신보 2007년 11월 5일자 칼럼을 통해 특정 진료항목에 사활을 걸고 매달려야 하는 우리 치과계의 현실을 한탄하며, “임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의료제도 개선의 절박한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로부터 4년, 그 사이 우리 치과계는 불법 네트워크라는 힘겨운 적을 만나 허우적거렸고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불건강한 의료현실을 감안할 때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일이었고 앞으로 언제라도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불씨라고 생각된다. 적의 기는 꺾었으나 이 고비를 통해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후유증이 만만치 않고 비슷한 유혹이 독버섯같이 피어날 현실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치과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이 매우 바뀌었음을 경험하고 있다. 의료라는 고도의 서비스가 상품화된 것은 상당히 오래 된 일이기는 하나, 이런 시선을 느끼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집에 든 쥐를 잡으려면, 집에 흠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잡아야지 집에 불을 질러서는 안 되는데… 또 쥐가 도망들어간 구멍을 밤송이로 틀어막았다 해서 쥐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언제고 다른 구멍을 파서 안방으로 다시 나올지 모르지?
이제 우리는 문제의 발단 원인을 원점에서 숙고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당연히 “우리가 왜 특정 진료항목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가”가 돼야 한다. 위의 시에서 나를 떠나신 님에게는 원망할 아무런 탓이 없었다. 사랑할수록 아껴야 한다는 말을 까맣게 잊고, 마치 블루칩인 것처럼 님을 아무데나 모신 나에게 절대적인 허물이 있는 것이다. 선조로부터 물러받고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그 수많은 연장들을 녹슬 정도로 외면하고 오로지 님에게 매달린 나의 문제이다. 님은 최근에 우리에게 소개되긴 했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가진 연장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님에게만 매달리지 않는 균형감각을 견지한 의사가 당연히 성공하고 상혼이 발을 뻗을 수 없는 그런 현실을 구축하는 것이 내 집에서 쥐를 영구히 쫓아내는 길이요, 님을 올바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님이 우리의 ‘운명의 지침’을 바꿀 정도로 님에게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님에게 매달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선결해야 할 과제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었던 연장들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제도를 마련해 건강한 의료시장의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고, 나아가 그 건강성이 항구화될 수 있는 동력을 지속해서 공급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제도의 개선만 기다리지 말고, 소위 도덕 재무장을 지속적으로 해 갈 필요가 절실하다. 의료 윤리에 대한 인식 강화는 의료시장의 건강성을 유지하면서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대학 교육에서부터 출발돼야 하고 기성 개원의들에게도 지속적인 목소리가 도달돼야 마땅하다.
요즈음 우리의 정치와 사회를 훑어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보편적 복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이에 대한 국민적 갈증도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선거를 거듭할수록 이를 향한 변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그 복지의 중심에 의료가 자리잡고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무상교육, 무상보육, 무상급식…그 다음으로 나올 화두는 무엇일까.
치과계는 국민복지의 확대라는 역사의 거대한 물결을 외면하거나 거역해서도 안 되고 또 그럴 능력도 없다. 문제는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가 가진 연장의 소중함을 우리 자신부터 인식하고 나아가 남으로부터도 인정받아 우리의 자긍심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것만이 내 집에 다시는 쥐가 들지 않도록 하면서 동시에 님을 올바로 사랑하는 길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8) 자연치아아끼기운동(상임대표 서영수)이 국민의 구강건강 지키기에 앞장서는 바른 치과의사상을 고취시키자는 취지로 본지에 칼럼 연재를 시작한다. 월 1회 게재되는 칼럼에서는 자연치아아끼기운동이 말하는 의료인의 근본 자세에서부터 치과계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과 대안이 제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