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8 (수)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릴레이수필(859)>
틀니 닦아주는 아들
박금출(종로구 박금출치과의원 원장)

종가집 며느리, 홀로 자식 뒷바라지 어머니 힘겨운 삶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느 날 오후였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겠어요?” 인사를 하는 그 환자를 알아보았다. 뽑아도 계속 나기에 지금은 생긴 대로 살리라 작정하고 뽑기를 포기한 흰머리 중에 적어도 3개 이상은 책임지셔야 되는 아주머니였다. “오셨어요? 오랜만이시네요?”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나는 약간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 아주머니를 만난 것은 10년 전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장부같이 생긴 분이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일단 제 이야기부터 들어보세요. 저는 틀니를 하러 왔어요.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어요. 기다리지 않게 해 주세요. 그런데다가 신경도 예민하고 까다로워서 심장병, 위장병, 신경성 질환 등 없는 병이 없어요. 항상 몸이 여기저기가 아파요”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난 뒤에 검사를 해보았다. 아주머니의 말대로 건강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그리고 잇몸 뼈가 너무 줄어 틀니를 해도 제대로 쓰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저는 자신이 없으니 대학병원으로 의뢰해 드리겠습니다.” “소문 듣고 왔으니, 선생님이 알아서 잘 해주세요. 그냥 밥만 먹게 해 주시면 돼요.” 나는 최선을 다해 그 아주머니의 틀니를 만들어 드렸다. 그 후 10년 만에 다시 병원을 찾아온 것이다. 아주머니는 겉보기에도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표정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말을 할 때도 느긋하게 천천히 하셨다. 예전의 아주머니하고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 까닭을 물었다. “내가 하던 시장 일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집에서 쉬고 있어요. 이젠 시간도 많고 하니 천천히 해 주세요.” 그 아주머니는 잠시 뒤에 아들도 치과 진료를 받기 위해 올 거라며 아들 대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경로 우대를 해드리기에 먼저 받고 기다리시라고 권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시간이 많은 자신은 늦게 해도 된다며 사양하셨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내 일을 물려받았는데 안타까워서 못 보겠어요. 목욕할 시간도 없고 밥 먹을 시간도 없어요. 화장실 가는 것도 참아가며 일해요.”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아들 부탁을 잊지 않았다. “선생님, 그 아이가 치료받을 시간도 없는 애예요. 안 기다리게 좀 해 주세요.” 잠시 후 아주머니의 아들이 병원에 들어섰다. “너는 좀 쉬면서 하라니까 그러니?”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너도 내가 왜 아픈지 이제는 알 거다.” 아들을 치료하는 중에 아주머니의 지난날을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종가집 며느리로 시집을 왔다가 일찍이 홀도 된 뒤에 자식들을 키우며 사셨다고 했다. 그리고 아들은 덧붙였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고생하고 살아오신 지난날이 뼈에 사무쳐요. 그래서 요즘은 식사가 끝나면 어머니 틀니를 달라고 해서 닦아드려요.” 많은 사람들은 틀니를 더러운 물건이나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여긴다. 나이 들어 물건이 안 보일 때 스는 돋보기는 맙게 생각하면서도 유독 틀니만은 싫어한다. 자식들도 틀니를 닦아 드리기는 커녕 식탁에서 꺼내면 교양없고 주책 맞은 늙은이로 여기며 눈살을 찌푸린다. 틀니를 만지는 것은 고사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기겁을 하는데, 아주머니의 아들은 달랐다. 나는 아주머니의 아들에게 틀니를 닦아주는 이유를 물었다. “어머니는 연세가 많으셔서 틀니가 무겁잖아요. 닦으시려면 힘도 들고요.” 아주머니의 아들은 당연히 해야 할 그 정도 일이 뭐 대단하냐는 듯 겸손한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가게를 물려받고 보니 고생스러웠을 어머니의 인생이 눈물이 날 정도로 가엾고 한없는 감동을 느낀 나머지, 정작 틀니를 해 넣은 본인들도 꺼림칙해 하는 틀니를 닦아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사실 치과 의사인 나도 그 동안 어머니 틀니를 한번도 닦아드린 적이 없었다. 효도란 이처럼 작은 정성과 관심에 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얼마 전에 ‘시와 시학사’ 초청으로 조병화 시인 팔순 기념 및 50권째 시집 발간을 축하하는 기념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시인의 인생을 총결산하는 대표작을 낭송해 달라는 사회자의 부탁이 있자, 병화 시인은 한동안 극구 사양하였다. “부끄럽습니다, 정말 읽을 게 없네요.” 겸손하게 사양하는 시인이 더 멋져 보였다. 거듭 부탁을 하자 노시인은 마지못해 일어섰다. “꼭 해야 한다면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노 시안은 잠시 뒤에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시작했다.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 나왔다가 / 이제 어머니 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