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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난 인연

스펙트럼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 가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가을은 가만히 앉아 책을 읽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계절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가을에 오히려 독서량이 줄어든다는 설문조사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가을은 책이랑 참 잘 어울리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이모부님께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시간에 맞춰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갔었습니다. 독감인줄 알고 병원에 가셨는데 심부전에 의한 호흡 곤란이라는 진단을 받고 바로 입원을 해서 경과를 지켜보는 중이셨지요.

 
짧은 시간 동안의 면회를 마치고 진료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돌아오는 길, 병원 앞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출발하자마자 기사분이 룸미러로 저를 보며 물으십니다.


“혹시 장영희 교수님 아세요?”
영문학자, 서강대 교수, 장애인이었고, 나중에는 암과 싸우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며 쓴 진솔한 에세이로 유명한 분, 이 정도가 떠올랐습니다.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님 말씀이지요? 그 분 책 몇 권 읽어봤어요. 참 좋던데요.” 

 
이렇게 대답하자, 기사분이 아주 반가워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몇 년 전 장영희 교수가 돌아가시기 전, 조금 전에 내가 탔던 바로 그 자리에서 장영희 교수가 택시를 탔었답니다. 그 기사분은 책을 아주 좋아하는 분이었고,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를 감명 깊게 읽었던 터라 혹시 장영희 교수님 아니시냐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 사인을 부탁했더니 장영희 교수가 소녀처럼 기뻐하셨다고, 그 일이 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장교수의 부고를 들었고, 신촌 그 자리에 오면 장영희 교수의 그 때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그 기사분은 마흔이 넘어서 심 훈의 ‘상록수’를 읽고 감명을 받은 뒤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책과 관련된 인연이 많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마음에 드는 작가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SNS로 연락을 하면, 국내외 작가 모두 어김없이 답을 주고 아주 반갑게 대해 주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기쁘다고 하시더군요. 택시를 운행하다 유명한 작가의 생가나 기념관 근처를 가게 되면 관심이 있어 살펴보게 되고, 그러다가 작가의 후손들과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손님으로 알게 된 출판사 사람들이 책을 선물하기도 하구요.


주로 마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데, 한번에 다섯 권을 빌릴 수 있지만 이것저것 보고 싶은 책을 집다 보면 다섯 권이 금방 넘어버려 어떤 책을 뺄까 고민한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책을 고를 때의 기쁨이 그대로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1년에 대략 120권 정도를 읽으신다고 하니 참 대단하지요? 한국의 근, 현대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놀랐는데 그 말씀을 들으니 이해가 되더군요. 저는 기껏해야 1년에 30~40권이 고작인데 말입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으면 적어달라면서 수첩을 주시는데, 많은 작가와 작품이 빼곡히 적힌 수첩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와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적어드리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치과로 걸어오면서, 그 기사분이 책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 소년같이 순수해 보여서 뭔가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택시 번호도 안보고 내렸구나 생각하던 중, 영수증을 보니 기사분의 핸드폰번호가 찍혀 있더라구요. 그래서 책을 몇 권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대화 중에 도서관에 가서 ‘토지’를 빌리려고 하면 꼭 1, 2권이 없더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토지 1, 2권, 아까 추천드렸던 책 중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그리고 또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인 조지수의 ‘나스타샤’ 이렇게 4권의 책을 보내드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책 선물 고맙게 잘 받으셨다고 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전략)
이제 기온이 좀더 내려 간다고 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이 좋은 가을에 아름다운 추억 만들어서 저 앞에 있는 겨울로 들어가 혹한이 아우성일 때 가을에서 가져온 추억을 꺼내 들고 혹한을 녹이셨으면 합니다.
두서 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쁜 꿈 가득한 편안한 밤 되십시오. 고맙습니다.


참 문학적이시지요? 선물은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기쁜 듯합니다.
국민독서실태조사에 의하면, 성인 연간 평균 독서량이 2007년 12.1권에서 2011년 9.9권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고, 현재 한달 평균 독서량 0.8권으로 OECD 국가 중 독서량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성인 10명 중 3명 이상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하구요.
책은 삶의 지평을 넓혀 주고 풍요롭게 해 주는 선물입니다.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 책과 좀 더 친해지는 건 어떨까요?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은아

e-바른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