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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있는 병원

스펙트럼

얼마 전에 대형 종합병원에서 몸 전체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전화로 예약을 할 때부터 너무나 친절했고, 검진 날 병원을 방문했을 때에 엘리베이터 입구에서부터 접수대까지 인도해주시는 직원, 접수 과정도 당일 소요시간과 더불어서 진행될 검사내용 안내까지 매우 빠르면서도 맞춤으로 잘 진행되어졌다. 이어지는 검사 또한 각 검사실로의 이동을 안내해주시는 분이 계속 함께 해주었기 때문에 한 검사실에서 나와서 이리갈까 저리갈까 하는 고민을 안하게 되는 것은 물론 각각 검사를 진행 해주시는 분들도 친절은 기본이고 이전에 다른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을 때에 경험해보지 못한 서비스를 제공해주셔서 아내와 함께 매우 만족하면서 검사를 마칠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 건강과 행복을 전하고 싶습니다’가 그 병원의 캐치프레이즈였다. 내세운 대로 제대로 해주는 병원이구나 생각하고 주위 분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해주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검사결과를 CD와 서류로 급하게 다른 병원으로 가져가야하는 일이 생겼다.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이야기하고 신청을 하려 하였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직원 분의 응대는 검진센터에서와는 달랐다. 전화상으로 검진결과를 복사신청을 하는 것은 안되고 본인이 직접 신분증을 지참해 내원해서 신청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였다. 신청하면 바로 되냐고 문의하니 1시간가량 소요될 것이라고 하였다. 자료를 받으러 가서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기다리기가 힘들다고 사정하면서 전화상으로 신청을 받아달라고 하니 개인정보 유출 방지를 위한 원칙이라고 하였다. 개인정보 유출을 하지 않도록 서로가 노력해야하는 것은 충분히 공감하고 맞는 말이지만, 이런 경우에 신청은 유선상으로 본인임을 확인받고(금융기관처럼 여러가지 정보를 확인받음으로써)할 수 있도록 하고, 자료를 찾을 때에 본인임을 신분증으로 확인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의견을 제시하면서 또 혹시라도 신청한 자료를 찾으러 가지 않아서 병원이 금전적으로 손해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카드를 오픈하겠다고 까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요청했으나 기계적인 반응으로 직원 분은 병원의 원칙상 안된다라는 이야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고, 안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서 전화받으시는 분 말고 더 윗분 중에 그 원칙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과 통화하고 싶다고 이번에는 매우 강한 어조로 이야기 해보았다. 그랬더니… 그분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었고, 특별히 전화상으로 신청을 받아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애원하듯이 여러 번에 걸쳐서 이야기했을 때에는 들은 시늉도 안하고 원칙만을 이야기 하던 직원분이 그렇게 태도가 변하는 것을 경험했을 때의 그 느낌이란….

자료를 받으러 갔더니 CD와 서류가 잘 준비되어 5분도 채 걸리지 않고 바로 찾을 수가 있었다. 돌아서서 나오려는데 그 바로 옆에 ‘고객의 소리 상담실’이란 팻말과 함께 ‘병원을 이용하시다가 불편하신 것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라는 문구의 방이 있길래 이랬다 저랬다 말을 번복한 직원의 일관성 없는 일처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남기려고 들어가서 직원분께 정황을 이야기했더니 처음의 그 전화직원과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똑같이 원칙을 내세우면서 강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서 더 윗분을 만날 수 있었다. 의무기록 신청을 환자 개인정보 유출을 막으면서도 전화상으로 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에 대한 의견을 조용히 말씀드리니 그 분은 그렇지 않아도 병원에서 그런 시스템을 준비중이라고 하면서 좋은 의견을 내주셔서 병원의 발전을 위해서 도움을 주심에 감사드린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뭐가 뭔지 종잡을 수 없는 병원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원칙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경험이었다. 처음에 세워질 때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잘 정해져야 할 것이고, 확실한 검토에 의해서 세워진 원칙이라면 되도록 예외가 생기면 안될 것이다. 조용하고 순하게 이야기하는 고객에게는 강하게 적용되고, 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는 예외적으로 해주는 그런 원칙은 이미 원칙이 아닐 것이다. 우리 병원에서 나는 어떤 원칙으로 환자를 대하고 있는가 라고 자문해보았다. 내가 세운 원칙이 ‘세상의 모든 이에게 건강과 행복을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에 걸맞게 환자분들을 이롭게 하는 것인가를 곱씹어서 검토해야할 것 같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