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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 김인철 박사님 영전에

추 도 사

선생님 그립습니다.

저희들을 불러 저녁식사를 하시거나, 때로는 저희들이 모시면 “이봐, 자네들도 이제 70이 넘었어.”하시면서 저희들에게 많은 사연과 철학을 심어 주셨습니다.

서울대 치대(중구 소공동 111)에 입학하시고 개성에서 서울역을 왕복하시던 기차통학, 종로구 소격동에서 자취하시던 일, 8·15광복이 되자 학생회간부였던 선생님께선 우익과 좌익으로 갈린 학생들 사이에 좌익에 대결하셨던 이야기, 개성에서 잠시 개업하셨다가 6·25가 발발하자 ‘빨리 피신하라’는 동기의 말을 듣고 야반도주하여 송악산 자락과 이름 모를 마을을 거쳐 한강을 헤엄쳐 남하하셨던 구사일생의 과거, 군번 없이 미25사단 27연대 75대대 통역관으로 임진강 철교폭파, 관악산전투에도 참전하셨다가 부산피난시절 해군에 입대하시어 치과군의관으로는 최초로 백령도에 근무하셨던 무용담, 퇴역 길에 지고나오는 더블 백에 페니실린을 듬뿍 넣어 주며 환송해주던 미군군의관, 사모님과 만나 결혼하신 이야기, 미아리 단독주택에 사실 때 도둑이 들자 이불 뒤집어쓰고 무저항하시던 스릴 넘친 인생살이….

선생님께선 주변에 진한 인간미를 남기셨습니다.

서울대 치대 교수시절에는 이영옥 교수님의 뒤를 이어 치과보철학을 과학화하고 첨단 기기화하는 데도 선각자이셨습니다. 1960년대에는 기존의 측정기인 electronic strain gauge를 변형하시어 오차범위를 극소화 시켜서 교합력측정기를 제작 하셨습니다. 이 장치로 한국인의 교합력, 인공치열의 저작력 등 보철학분야 연구 중흥에 이바지하셨습니다.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모터의 구륜운동을 좌우수평운동으로 전환시킨, 비록 구조가 간단해 보이는 기계이지만 이를 이용해 치아경조직 경도와 경석고 경도 그리고 칫솔의 솔 마모도 실험적 측정에도 기여하셨습니다. 1973년, 서울대 치대 3학년에 교합학 강좌를 개설하시어 치의학의 통합적 발전에 크나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곧 이어서 부분의치의 각종 클래스프 형태와 언더컷량에 따른 지대치의 이동 및 운동량을 소나를 이용해 3차원적으로 값을 얻어내는 박사학위논문을 지도 하셨습니다.

지나놓고 보면 국가나 사회가 넉넉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어려울 때였건만 만난을 극복하신 선생님을 뒤따른 제자 모두는 자랑과 긍지를 가슴 가득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대한치과보철학회장 시절에는, 등사본으로 내려오던 학회지를 쇄신하여 1968년 대한치과보철학회 학회지부터는 치의학계에서는 최초로 활자 인쇄본을 내시어 학회에 새바람을 일으키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공직치과의사회를 조직하셨습니다. 전국 치대교수와 공직에 근무하는 치과의사들이 학술발표는 물론 유기적인 인적 교류를 원활히 하여 권익신장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교수직을 사퇴한다며 홀연히 대학을 떠나시더니 개원의들의 단체인 대한치과의사협회장이 되셔서는 대국민 설탕 덜먹기 운동을 벌이셨지요.

전국소비자보호연맹과 함께 충치병 예방에도 횃불을 드셨습니다.
당시 영등포 소재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에 새마을치과진료소를 개소하여 저소득 빈민을 무료 치료를 하여 정부시책에도 앞장 서 모범을 보이셨지요.

협회장을 마치시자마자 1978년 3월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장으로 부임하셨지요.
취임 초에, 치과의사보다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인성과 도덕을 강조하셨습니다. 훌륭한 치과의사를 배출시키기 위해 힘쓰셨고 특히 졸업생의 치과의사 자격시험 100%를 목표로 하고, 적지 않은 학생이 국가시험에 응시조차 못하는 사례를 맞기도 하셨지요.

6년간의 학장직에서 퇴임, 압구정동에서 개원하시며 낚시와 자연을 벗 삼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결혼 전, 혼자 식사하실 때에는 벽에 붙여 놓은 사모님 얼굴 그림을 보시며 숟가락을 들었다고 젊은 날을 회고하셨습니다. 사모님께서 타계하시자, 저희들은 쓸쓸해하실 줄 알면서도 사모님의 이야기를 자주 여쭈어보곤 하였지요.

저희들과, 선생님의 고향이자 소년시절 꿈을 키우던 북녘 개성과 박연폭포를 둘러보시고 오셔서 흐뭇해하시던 일도 벌써 6년이나 지났습니다.
백령도 2박3일 여행을 아주 어렵게 결정하시던 그 날 저녁시간, TV화면에 천안함 폭침뉴스가 떴지요. 선생님과 함께 하는 즐거운 여행이었을 기회를 잃어 한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선생님, 김포시 선영에 사모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선생님, 사모님과 함께 천국에서 편히 쉬옵소서.
명복을 비옵나이다.
                              
        2014(甲午)년 9월 27 일
       호상 이병태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