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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일기장을 꺼내어

스펙트럼

어느 날 출근길 차안에서 라디오의 스피커를 통해서 들리는 노래가 갑자기 내 귀를 사로잡았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랬다. “내겐 더 많은 날이 있어 무슨 걱정 있을까~ 어제 힘들었던 순간들은 모두 지나간 것일 뿐, 하루하루 사는 것은 모두 기쁨일 뿐이야~” 90년대 초반쯤에 유행했던 2인조 밴드의 노래였는데 그 노래의 제목은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였다.

그래! 나도 일기를 쓸 때가 있었지! 그 노래를 들으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일기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힘들게 구석구석을 뒤져서 오래된 일기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가장 열심히 썼을 때가 연세대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 시절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내용들이 적혀있을 일기장을 찾은 것만으로도 어느새 나의 마음은 그 당시의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바로 그 일기장에 적혀있던 사람들이 2014년 여름이 지나갈 무렵 어느 식당에서 모여서 무엇인가에 대해서 열띤 상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이어져오는 치과대학 졸업 25주년 재상봉 행사에 관한 것이었는데, 여러 가지 이벤트에 대해서 구체적인 날짜와 더불어 어떻게 치를 것인가를 이후 반년동안 수차례의 회의를 거쳤다. 드디어 5월에 펼쳐진 교수님들과 함께한 풍성한 사은회와 조용한 추억의 부여여행, 그리고 본교재상봉행사와 합창 모두 무사히 그리고 즐겁고 의미있게 잘 마쳤다. 구름위를 걷는 것처럼 들뜬 마음으로 즐겼던 어울림을 뒤로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또 하루하루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흘러간다.

25년 전 졸업 때 기념품으로 받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우리 대학교의 건학이념이 새겨진 책상위의 돌패를 보면서 학교 캠퍼스와 병원에서 양육 받은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에 나도 모르는 사이 학교의 교육이념이 현재의 나의 영혼에 스며들었음을 감사드린다. 소아청소년 치과의사인 내가 학생들을 치료해주다보면, 한없이 맑은 심성을 가진 아이들이 과열된 입시제도에 억눌려서 치료예약 시간을 쉽게 정하지도 못하고 학원시간 등 빡빡한 스케줄에 쫓겨 서둘러서 돌아가는 경우를 안타깝게 많이 접하게 된다. 내가 그 시절에 못했던 아쉬웠던 것들을 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내 자식들 뿐 아니라 그 아이들에게도 생기기 때문에 한 아이라도 더욱 열심히 돌보고 챙겨준다.

보통 우리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걷고 먹고,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축복인가는, 몸이 아파서 그런 자연스러운 것을 못하는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모른다. 이번에 미국 등에서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친구들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주 만나지는 못했던 동기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기쁨 속에 서로는 끈끈한 정을 느꼈고, 이번 행사를 통해서 바라만 보아도 행복해지는 우리 동기들의 존재를 느끼고 가슴 깊이 뿌듯함을 만끽하는 나 자신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고 오래 오래 감동으로 간직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은회와 여행, 그리고 합창까지 이어진 릴레이 축제는 25년 후에 50주년 기념행사를 고대하면서 나의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우리 서로의 가슴에 또 다른 추억을 새기면서…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