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으로 인한 병원 파업으로
환자가 느꼈을 박탈감 이해
치과경영 세미나 듣는 것보다
환자 입장 돼 보니 더 효과적
지난 겨울, 콧물 감기에 목감기로 계속 감기기운이 없어지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진료해야 된다는 핑계로 그냥 병원에 있는 약을 좀 심할 때마다 콩 주워 먹듯이 먹다보니 이 콧물 감기가 급기야 여름을 지나고 만성화되면서 만성 부비동염이 되고 말았다.
결국 치과에 있는 약을 먹어도 제대로 낫지 않아 동네 이비인후과를 가니 일단 약을 먹어 보잔다. 이비인후과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X-ray도 없고 원장님을 잘 알아서 그런지 닭 모이 주듯이 약만 계속 줘서 먹었는데도 전혀 증상의 개선이 없었다.
이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겠구나 싶어 치과 휴진하고 대학병원을 가기로 작심했다. 물론 내가 간 병원이 마침 장기파업 중이라 그렇겠지만 초진에 X-ray 검사, 초음파 검사, CT촬영까지 9번을 가서야 결국 만성 부비동염으로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진료실에서 의사의 신분으로 술자의 위치에만 있다가 이렇게 환자의 입장이 되고 보니 다시 한번 병원이 새롭게 느껴진다. 극한으로 치닫으며 노(勞)든 사(使)든 서로 하지 말아야 할 말들, 넘지 말아야 할 선들을 넘는 모습 속에 나의 사랑하는 모교의 병원이 환자들은 뒷전인체 망가져가는 과정에 왜이리 마음이 쓰린지, 결국 사연이야 어떻든 의약분업으로 인한 파업으로 환자분들이 느꼈을 심정적 박탈감에 대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결국 4일간의 입원을 계획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입원 다음날 아침 6시부터 체온 재고 주사 맞고 9시 30분에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 내용 자체보다는 전신마취에 대한 심적 부담이 더 컸는데 수술실에 누워 마취과 선생님과의 간단한 여담 후 몽롱....
1시간 계획한 수술이 총 2시간이 넘게 걸렸고 회복실 시간까지 4시간 30분이 걸렸다. 코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내 코의 2배가 넘게 커져 있었고, 마취 직전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정리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그동안 내가 욕심이 많았구나. 욕심이 많았기에 집착을 하게 되고 결국 건강을 잃은 후 건강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구나, 걱정과 불안에 눈시울을 적시던 어머니와 결혼한지 얼마 안돼 임신한 몸으로 잡은 손을 놓지 않던 사랑하는 아내를 이렇게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인생을 살면서 반복되는 생활 속에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부족하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싶어 힘들었는데 이제 보니 내가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구나, 혼자서 철 다 들은 줄 알았는데 이제야 이런 평범한 진리를 깨닫다니 아직도 철들려면 멀었구나 하는 자책을 하게 된다.
입원기간 계속되는 항생제주사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주사가 아프기도 하지만 그 양은 정말이지 많기도 하다. 말 그대로 온 몸을 항생제에 푹 담그는 느낌이다.
간단한 코 수술에 이렇게 온 몸이 축나다니, 계속되는 주사에 어지간히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힘든 내색 않고 임신한 몸으로 밤낮없이 간호해주는 집사람이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퇴원 후 참 생각이 깊어졌다. 의사로서 한번쯤은 아니 가능하면 정기적(?)으로 진정한 환자의 입장이 되어봐야겠다. 환자로서 가지는 불안감, 고통, 궁금증 등등, 참 환자의 입장에서는 뭐하나 편한 구석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개원 후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름대로 열심히 성심 성의껏 진료하리라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반복되는 생활의 권태로움에 환자의 불편함을 도외시하지 않았는가, 의사 선생님께 물어 볼 것, 궁금한 것이 많은 환자의 불안감을 뻔한 얘기를 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무성의하게 듣지는 않았는가, 아프다하면 ‘어쩔 수 없다’, ‘원래 그런거다’라며 그저 진료만 빨리 끝내려하지 않았는가 되돌아보게 됐다.
퇴원 후 첫 출근하는 날 먼저 Needle을 27G에서 30G로 바꿨다. 아무래도 가늘면 덜 아프겠지, 도포 마취제도 마취전 사용하고, 소아환자들에겐 마취 시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아무리 환자가 많아 진료시간이 부족해도 똑같이 반복되는 환자의 질문에 다시 한번 경청하는 자세를 잊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갈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어떤 치과경영세미나를 듣는 것 보다 이렇게 한번 환자의 입장이 되어 보는게 더 효과적(?)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입원 덕분에 부부간의 금슬도 더 좋아졌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도 깊어졌다. 앞으로 이 마음 변치말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