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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수필(875)>
어느 하루
이성희 / 경기화성 미래치과의원

공보의 남편 따라간 객지에서 노심초사 첫 딸 났던날 순조롭지 못한 분만으로, 나만큼 고생한 딸아이 어느새 6섯살 꼬마로 성장해
예정일을 열흘 넘긴 상태다. 초산이라 좀 늦어질 꺼라 했지만, 보는 사람들마다 “아직 아기가 밑으로 내려오지 않았구먼, 보름은 더 있어야 겠네” 라고들 말씀하신다. 남편 말로는 모두 게으름 때문이란다. 턱턱 숨 가빠하는 나와는 상관없이 4층 아파트까지 걸어서 오르락내리락 하란다. 잔심부름까지 시키면서. 지난 진료 때 산부인과 선생님도 오늘까지 아이가 나오지 않으면 ‘그만 꺼내자’고 하셨다. 아무튼 오늘이 병원 약속일 인데.... 출근하려는 남편을 붙잡으며 “오늘 중으로 아이 낳아줄 테니까, 나랑 같이 병원에 가요” 라고 농담을 했는데, 정말 이슬이 보인 것이다. 진료약속시간에 입원준비 가방까지 모조리 들고서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오늘도 외래환자에 정신없이 바쁘셨고, 응급분만 환자까지 있어서, 내 차례는 자꾸만 뒤쳐졌다. 대기실 창 밖으론, 3월 겨울나무를 깨우는 봄비가 소곤소곤 내리고 있다. 병원에선 진통간격이 더 짧아지면 오라고 하지만, 공보의 남편을 따라온 객지에서 혼자 배아프고 있을 일이 두려운지라 나는 비 핑계를 대며 병원에서 버티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배가 규칙적으로 아파 온다. 비오는 창을 바라보면 늘 차분해진다. 초산-언젠가 병원에 있는 동생에게 물었다. “애 낳다 기절해도 애는 나오냐?” 동생은 걱정 말랜다. 소리도 없이 젖어 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즉석에서 배운 라마즈 호흡을 한다. “후푸푸- 후푸푸-.” 내 옆의 어린 산모는 울고불고 난리다. 스물 둘이라는데 완전히 겁먹은 표정이다. 산모가 고함지르면 힘을 줄 수 없다고 간호사가 와서 핀잔을 준다. 나는 얌전히 아주 얌전히 시키는 대로 힘을 주고 소리를 삼킨다. 잠깐 간호사가 책을 갖다 준다. 남편이 보낸 거라나? 안에서 심심할테니 책이라도 읽고 있으라며. (오 황당!) 순조롭던 분만이 갑자기 진행되지 않는다며 아이상태가 좋지 않다고 간호사 한 명이 선생님을 부르러 뛰어가고, 심호흡을 하라하고 산소 나오는 마스크를 씌워주고 그런다. 아이머리가 걸렸단다. ‘아, 나만 힘 드는게 아니구나. 아이도 산모를 빠져 나오기 위해 용을 쓰고 있구나. 그래 우리 최선을 다하자.’ 드디어 선생님 등장. 이 순간엔 남편보다 더 믿음직하다. 나는 선생님 손을 잡는다. 자신있는 목소리로 “자 시작합시다.” 간호사 한 명이 내 배를 누르고, 나는 호흡을 멈추면서 힘을 준다. 실패. “한번 더 합시다.” 다시 시작한다. 이번에도 안 나오면 vacuum을 걸꺼라나 어쩐데나. “힘주세요.” “우음...” 시원한 아기울음소리, “으앙.” “공주님이네요.” 아기가 나왔다. 답안지 확인할 때처럼 가슴이 한없이 콩닥거린다. 어떻게 생겼을까? 힐끔보니 ET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뾰족하고 너무 이상하다. 선생님께선 분만 중에 아이가 고생해서 그렇다고 하시지만 여튼 좀 당황스럽다. 창 밖이 어느새 까맣다. 입원실로 돌아온 후 나는 씩씩하게 혼자서 푹 꺼져있을 내 배에 대한 기대감으로 화장실에 갔다. 아뿔싸, 배는 거의 가라앉지 않았군... 각설하고, 개체분열한 후의 뿌듯함. 세포도 분열 후엔 이렇게 기쁠까? 정말 멋진 하루다. 난 이제 엄마가 되었다. 그 못난이가 지금은 나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잘 자라서 어느새 여섯 살이다. 물론 그때 부풀었던 내 배도 정상을 되찾았고, 요즘도 저 태어나던 날 얘기를 해달라며 이티 같았다고 하는 대목에선 “이티? 이티?” 하면서 까룩까룩 웃어제끼는 귀염둥이. 네가 내게 와서 내 인생이 얼마나 따사로운지. 은우 사랑하는 내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