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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선언·헌장·지침 내어놓고 토론하자

■신년기획-특별기고/ 이 시대 다시 묻는 'Dental Professionalism'

치대 신입생들에게 치대에 왜 왔느냐고 물으면 치과의사가 ‘전문직(專門職)’이라서 택했다고 말한다. 전문직을 택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 때문이라고 말한다. 치과의사가 왜 전문직이냐고 물으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로페션 (profession)’을 ‘전문직’이라고 번역하기 때문인 듯하다. 원어 프로페션의 어원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엇갈린다. profess는 ‘미리(pro-) 말하다 (-fess)’, 즉 도움이 필요하면 나를 믿고 맡기라는 선언이라는 해석이 있고, ‘앞에서(pro-)’ ‘말하다 (-fess)’, 즉 세금징수원 ‘앞에서(pro-)’ 자기 직업이 무엇인지 ‘말하다 (-fess)라는 뜻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실 프로페션의 번역이나 어원이 그리 대수겠는가? ‘프로답다 (professional)’는 게 중요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치과의사가 ‘프로페셔널하다, 프로답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보통 그 기준은 전문직 윤리지침에 들어있다. 치대생들에게 각국의 치과의사 윤리강령 또는 윤리지침을 찾아서 비교해보라고 하면, 우리나라 치과의사 윤리지침을 찾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협회 사이트에 업로드가 되어있지 않아서다. 이미 200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 치과의사들이 따라야 할 윤리지침의 개정작업을 연구비를 들여 발주하였고 완성한 ‘대한치과의사윤리선언·헌장·지침’이 있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은 어떻게 봐야 할까? 윤리지침 개정작업은 완료한 지 십년이 되어 가는데, 발주처인 치협에서 아직 결과물을 승인하고 채택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은 필자의 견해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사회 속에서 전문직이 되기까지 서구에서 겪은 우여곡절이 없이 직업과 지식을 수입한 우리나라 치과의사들에게도 기준 삼을 윤리지침이 필요하다. 미국과 영국의 예를 보자.

첫째, 미국 ADA의 사이트에는 치과의사가 지켜야 할 원칙과 그 하위 규칙이 명시된 문서가 업로드 되어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업데이트 된다. 원칙과 규칙은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데, 세부지침이 지속적으로 추가보완 되고 있다. 개원의들이 실제 임상현장에서 겪는 문제를 고민하는 편지를 협회로 보내면 위원회가 토론해서 답을 협회지인 JADA에 게재하고 회원들이 이를 공유한다. 이런 사례가 쌓이고 토론 결과가 축적되어 지침이 정교해지고 세부항목의 번호가 추가된다.

영국의 BDA는 대한치과의사협회나 ADA와 성격이 다르다. BDA의 사이트에는 윤리지침이 없다. 그 대신 GDC (General Dental Council·전국치과의료위원회)에서 만든 원칙과 지침이 있다. GDC의 멤버는 절반이 치과의료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시민이다. 절반이 치과의료종사자의 대표들이다. 치과의사와 치과관련직역의 멤버들이다. 여기에서 치과의료현장에서 어떤 원칙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 정한다. 영국치과의사단체는 오래 전에 협상을 통해 여왕으로부터 자율규제권을 가져왔고, 덕분에 법이 개입하기 전에 GDC가 개입하여 치과의료인들을 관리한다.

우리나라 의료는 크게 보아, 껍질은 영국식이고 알맹이는 미국식이다. 형식은 정부 주도에, 내용은 민간에 맡겨져 있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시장과 정부 사이에서, 대사회적으로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여야 할까? 마땅히 우리나라 윤리지침에 그런 내용이 들어있어야 한다.

사회에 대한 치과의사의 책임은 두 가지 수준으로 대별할 수 있다. 치과의사 개인의 환자에 대한 책임이 있을 것이고, 치과의사 전체의 책임이 있을 것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두 가지 수준의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 치과의료의 파이를 키우는 일에서도 시장에 휩쓸리지 말고 국민의 이익을 우선하되 정부로부터 합당한 지원과 대가를 받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위고하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제대로 기능하는 치아가 없어서 음식을 제대로 씹어 먹지 못하거나, 너무 아파서 씹어 먹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왜 치과에 안 오는지 혹은 못 오는지 살펴볼 책임은 치과의사 전체에게 있다. 임플란트나 틀니 보험정책 등 막판 벼락치기 같은 정책에 대응하느라 급급하지 말고, 국민의 생애주기별로 어떤 치과의료필요가 어떻게 미충족되고 있는지 조사하고 대책도 제시하는 ‘프로페셔널한’ 단체가 되어야 한다. 대사회적 책임을 안고 대정부적 정책의 제안과 평가 노력을 해야 한다.

치과의사 개개인의 환자에 대한 책임과 대사회적 책임, 그리고 치과의사 전체의 대사회적 책임이 녹아든 윤리지침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를, 그리고 실제에 비추어 지침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아직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새해가 밝았다, 우리 모두의 가치, 우리 일의 의미부터 챙기자! 


강명신 강릉원주치대 교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