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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약속

기고

필자는 15년차 치과의사이지만, 개원한지는 1년 밖에 되지 않는 새내기(?) 원장이다. 

평생 구강악안면외과 의사로 살고 싶어서 해당과를 임의로 수련 받았고, 로컬에서도 구강악안면외과 원장으로 살기 위한 필요한 과정과 경험을 쌓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내 병원을 개원하기까지의 기간이 다른 동료들에 비해 좀 길었다. 1년 전 개원한 필자의 병원에는 전신마취 수술이 가능한 수술실과 입원실이 갖춰져 있으며, 필자가 ‘임의’로 수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치과의원으로 부터 양악수술이나 사랑니발치 같은 구강악안면외과 진료를 의뢰받아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10년차 이상되는 치과의사들은 모두들 1999년, ‘전치특위’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전국치과대학학생 연합이 조직한 특별위원회로 당시 전문치의제와 관련하여 무분별한 경과조치 시행에 대항하여 치과대학생들의 주장을 대변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임시 기구였다. 필자는 당시 본과2학년으로 병원 임상실습으로 운신의 폭이 넓지 못한 3,4학년 선배들을 대신해 특위를 이끌었던 주도적 학년이었고, 실제로 특위에서 실무를 맡아 활동하기도 했었다.

전치특위는 1999년 당시까지, 37년 동안 미루어져왔던 전문치의제를 시행하기 위해 ‘기존 치과의사 모두에게 수련여부와 상관없이 본인이 원하는 전문과목의 전문의 자격을 부여’하는 경과조치안에 대항하여 수 개월간 활동했었다. 투쟁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시행했던 수업거부로 다시 학교로 복귀했을 때에는 미뤄져왔던 본과2학년 학사일정을 해결하기 위해 수 개월 동안 매일 시험-수업-실습을 반복하는 고단한 시간을 보내야했고, 이러한 살인적 학업 스케줄로 개인적으로는 유급의 위기를 맞을 뻔 했던 시기이도 했다. 

치과대학생들이 수업거부를 풀고 교실로 복귀하고, 국시를 거부했던 2000년 졸업예정자들의 응시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약속이 협회 대의원총회에서 의결되었기 때문이다.

- 첫째, 기존 수련치과의사의 기득권 포기
- 둘째, 졸업생 8% 수준의 소수전문의 비율 유지 
- 셋째, 1차 의료기관의 전문과목 표방 금지

이후 필자는 나머지 학업과정을 거쳐 치과의사가 되었고, 학교 병원에 남아 전문의가 될지 어떨지 모르는 상태로 구강악안면외과 수련과정을 시작했다. 혹독한 수련 과정 중에 있으면서, 치과의사전문의 제도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레지던트 2년차가 되어 이제 좀 제정신을 찾을 만해졌을 때 전문의 제도에 관해 알게 된 사실은, 당시 새로 들어온 인턴부터 전문의가 될 수 있었고, 필자는 전공의 과정을 마쳐도 기득권을 포기하기로 한 기존 수련자에 해당된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사실이 서운하긴 했지만, 선배 치과의사들에 대항하여 학생 때 파업을 주도했던 1인으로서 ‘약속은 약속’이라는 생각으로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는 것에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우리가 지키기로 한 약속에는 기수련자의 기득권 포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8%의 소수 전문의제와 1차의료기관에서 전문과목 표방금지라는 두 가지 약속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4년 동안의 수련과정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필자는 2008년 2월, 두 번째 약속이 깨지는 것을 보았다. 3년차 전공의 시절, 새로 들어온 1년차 전공의들은 졸업생의 8% 정도 비율로 전문의가 될 수 있다는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2년 후 그들의 전문의 시험이 가까워지자 이 약속이 부당함을 주장하였고, 2008년 2월에는 220명의 전문의가 배출되었다. 당시 2만4천명의 치과의사들 중 220명이므로, 소수정예라고 속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 해 760명 정도의 치과의사가 배출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220명의 1회 전문의 배출은 우리의 두 번째 약속을 어긴 것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약속이 깨지고, 군의관을 마치면서 치과대학병원에서 전임의 과정을 지원하기로 한 필자는 전임의 지원서에 전문의자격 번호를 비워둘 수밖에 없었다. 군대를 가지 않는 전문의 후배와 전임의 동기가 되었고, 전문의가 될 수 있는 3개 년차의 후배들과 함께 ‘기득권을 포기한 기수련자’이면서 전속지도전문의로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임의 과정 이후 로컬에 나온 필자는 세 번째 약속이 깨지는 것을 보았다. 전문의들이 근무하거나 개업한 병원에서 ‘보건복지부 인정 치과전문의’라고 약력을 표시하고 광고하는 몇 해 후배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2014년 1월부터 1차 의료기관에서 전문과목을 표방하는 것이 법적으로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기수련자의 기득권 포기라는 약속을 제외하고는 모든 약속이 깨진 상황이 되었고, 비전문의인 다수의 회원들을 지켜줄 것만 같았던 의료법 77조3항이라는 유리방패 마저 위헌 결정으로 산산이 부서져버린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수련자들에게만 약속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어떤 정당성을 갖는 것인가. 기수련자들이 경과조치 시행을 주장하는 것이, 응시기회 미부여에 대한 헌법불합치를 받은 외국수련자들에 ‘묻어가는 행동’이라는 표현은 과연 적절한 것인가. 1972년과 1978년의 대통령령에 명시된 규정에 따라 치과의사 수련과정의 혹독한 시절을 보낸 동료들의 시간을 전문의 수련과정이 아닌 임의로 선택한 행동이었다라고 치부하는 것은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오는 2016년 1월30일, 임시대의원총회가 열린다. 여기서 우리는 치과의사 전문의제도에서 우리의 의견을 또 결정해야 한다. 기수련자 경과조치에 관해서 2014년, 2015년 협회 대의원총회에서 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세 번째로 이전과 비슷한, 아니 이전보다 우리 치과의사들의 운신의 폭이 더 좁은 안을 제시해 합의를 보라고 하고 있다. 이미 두 차례나 우리 단체의 의견이라고 내었는데, 또 의견을 내라고 하는 것이 납득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 사안에 대해 4월 정기대의원총회까지도 기다려주지 못한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관련 부처가 우리 협회를 우습게 알거나 다수 치과의사들의 합의 사항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우리가 했던 세 가지 약속들이 애초 깨질 수밖에 없는 것들은 아니었는지 냉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민수 MS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