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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X-men)을 꿈꾸며

스펙트럼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엑스맨 이라는 존재가 종종 언급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팀 분위기를 교란시키고, 팀원들이 해야 할 미션을 방해하는 좋지 않은 사람을 의미하는데, 원래의 엑스맨(X-Men)은 미국 마블 코믹스에서 발행되는 만화에 나오는 슈퍼히어로 팀이다. 요즈음엔 영화 시리즈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이야기의 설정은, 일반적인 인간과 다른 여러 가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돌연변이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은 세상의 삶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고,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돌연변이 능력자 중 하나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찰스 제이비어 교수(프로페서 X)가 이런 돌연변이들을 모아 인류에 이익을 위해 팀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이 되었다. 프로페서 X는 돌연변이들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고, 그 그룹은 특별한 힘의 근원인 유전자 X(X-gene)에서 따온 ‘엑스맨(X-Men)’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팀의 일원들은 정말 놀라운 능력들을 가지고 보여준다. 다쳐도 금방 다시 나아지는 몸, 폭풍을 일으키는 능력, 그 어떤 모습으로도 똑같이 변신할 수 있는가 하면, 순간이동으로 어느 곳이던지 자유자재로 갈 수 있고, 공중부양은 물론, 물건을 이동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수퍼맨이나 그 옛날의 서부영화 등 히어로 작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을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치과병원에서 일상을 지내면서 때때로 내가 이러한 엑스맨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어린아이 같은 엉뚱한 상상을 하곤 한다. 진료 중에 필요한 기구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내 손으로 그 기구를 끌어당길 수 있다면 너무 편리하겠고, 날카로운 도구에 손을 찔려서 피가 나고 며칠 붓고 아플 때면 순간적으로 상처가 치유되는 그들이 부럽고, 보호자가 터무니없는 말을 하면서 조폭같은 친인척을 동원해서 협박성의 이야기를 할 때는 손가락 까딱 만으로 그사람을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얼마 전에 후배가 연락이 와서 난처한 상황이 생겼다고 조언을 구했다. 아이 치료 중에 개구기를 사용했는데 치료 후에 보호자가 개구기를 잘 못 사용해서 아이의 아래 젖니 앞니가 약간 밀려 들어갔다고 주장하시면서 수 백만원의 위자료를 달라고 하셨단다. 상황이 애매하니 의료배상보험에 접수하여서 처리해드리겠다고 했더니 심하게 화를 내시면서 돈도 필요없으니 우리 아이 치아가 괜찮아질 때 까지 대학병원 확인, 소비자보호원에 알려서 더 이상의 같은 피해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며, 수시로 치과에 가서 항의도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경찰을 불러도 좋다고 하셨다는 것이었다. 후배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불안한 마음을 다독거려주는 것 말고는 도와줄 것이 없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면서 마음속에 슬그머니 또 다시 엑스맨들의 능력이 떠올렸다. 그런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는 보호자를 꼼짝없이 힘으로 제압할 그러한 능력은 뭐가 없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며칠 후 그 후배가 다행히 잘 해결되었다고 다시 연락을 주었다. 기뻐하면서 어떤 방법을 썼냐고 물어보았더니 의외로 너무 쉽게 대화가 되었다는 답이었다. 보호자분께서 그렇게 심하게 화를 내신 이유가 치료 후에 당신의 아이가 힘들어 했을 것을 의료진이 공감해주지 못한 부분과 마음의 성의를 보이지 않고 행정적인 절차인 배상보험을 운운하는 것에 대해서 격분된 것이었는데 다음 날 담당 선생님의 진정어린 말 속에서 본인이 오해했던 부분을 깨달으시고 스스로 그러한 요구와 분위기를 접으셨다는 내용을 전해 들었다.

 그 때서야 그 영화의 주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많은 능력을 가진 엑스맨들이 좌충우돌 하면서 수없이 싸움을 하면서 어떤 어려운 상황을 힘으로 해결하려 하는데, 결국 그들을 이끄는 존재는 육체적인 힘은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면서 나와 다른 사람이 적이 아니고 함께 동반해서 진정한 사랑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항상 주장하는 ‘프로페서 X’ 였고 그러한 마음이 영화 속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게 이런 생각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일깨워준 상황에 감사하며, 앞으로 내 앞에 대면하고 있는 환자가, 또 그분과의 사이에 생긴 상황이, 나와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를 때 마다, 마음속에 ‘엑스맨’을 떠올려보려 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