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교수의 ‘강의’ 라는 책에 보면 중국 전국시대, 세상이 어지럽고 도처의 모든 군주들이 패권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맹자가 제선왕(齊宣王)을 만나 군주로서의 자격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야기는 국가행사에 제물로 사용될 소가 부들부들 떨면서 끌려가는 것을 본 왕이 측은히 여겨 신하들에게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지시 한데서 시작된다. 백성들은 왕이 인색해서 돈이 아까워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한다고, 요즘 말로 하면 쫀쫀한 임금이라고 비난한다. 이 소식을 들은 맹자가 소나 양이나 똑 같은 가축이고 죽이는 것은 마찬 가지인데 왜 그런 지시를 했느냐고 제선왕에게 묻는다. 그러자 왕은 내가 그래도 한 나라의 제후인데, 설마 돈이 아까워서 그랬겠냐며 그냥 소가 불쌍해서 그랬다고 답변한다. 이에, 맹자가 왕의 처사야말로 바로 인(仁)의 실천이라고 말 하면서 왕이 그렇게 한 이유는 소는 보았으나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군자는 금수(禽獸)를 대함에 있어서 그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그 죽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그 비명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말한다.
신영복 교수는 맹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제선왕의 동물에 대한 측은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고 풀이한다. 측은함으로 말하자면 소나 양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소를 양으로 바꾼 까닭은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본다’는 사실이다. 본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이고 서로 안다(知)는 것으로 즉 ‘관계’를 의미한다고 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만남이 없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운전을 하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상욕을 해 대는 것도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방 운전자가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러겠는가. 인터넷 시대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 보다 보니 인간관계가 더 삭막해 진다.
최근에 치의신보에서 “동네치과 원장끼리 식사합시다”라는 캠페인을 보면서 큰 지지를 보낸다. 이제는 그러기도 포기 했지만 얼마 전까지도 제자들이 개원한다고 인사를 오면 꼭 주변 치과의사들에게 인사를 가라고 권했다. 그런데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유를 물어보면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로 반가워 하다니, 어느 누가 자기 밥그릇 나누어 먹자는데 반가워 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래도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반가워 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얼굴을 맞대고 잘 부탁드린다고, 많은 지도 바란다고 말하면 누가 웃는 얼굴에 침을 뱉겠는가. 가끔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사소한 말 실수로 또는 환자의 고의적인 말 만들기로 인해서 치과의사들 간에 오해가 생기는 것을 본다. 만약 서로가 친했던 사이라면 전화 한 통해서 확인하고 오해를 풀 수도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는 두고두고 섭섭해 한다.
지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전문의제도 문제만 해도 그렇다. 만일 옆 치과의사가 잘 하는 진료항목을 서로가 인정할 수 있다면 그래서 환자를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전문의 자격증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환자 입장에서 보면 그까짓 벽에 붙어 있는 전문의 종이조각 보다는 치과의사가 추천하는 치과의사에 더 강력한 신뢰가 가지 않겠는가. 이왕에 한 배를 탔는데, 서로 얼굴도 익히고 고민도 나누고 더 나아가서 서로의 환자를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치과의사 일도 훨씬 더 재미 있을 것이다. 서로 환자를 주고 받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옆 치과에서 불만을 가지고 온 환자를 잘 타일러서 다시 돌려 보낼 수만 있다면 서로의 신뢰와 품격을 높이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승종 연세치대 보존과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