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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커피 한 잔

스펙트럼

어느 날 문득 커피를 산책하며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 어느 체인점 매장을 방문해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다. 아르바이트 직원이 건네준 커피를 받아들고 나오려는 때에 손으로 들고 다니기에는 다소 뜨겁다고 느껴져서 평소 뜨거운 종이컵에 덧대도록 끼워주는 슬리브를 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받으리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아르바이트 직원 분은 슬리브는 냉커피를 위해서 준비된 것이기 때문에 줄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잘 못 들었나? 하는 생각에 다시 요청 해보았는데 당사의 매뉴얼로 된 원칙이라서 안된다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였다. 그리고 컵이 이중으로 되어있어서 괜찮다고 하면서 본인 손으로 직접 잡고 “봐요, 안뜨겁잖아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음식점에서 서빙해주시는 분이 손으로 집어서 주신다고 공기밥을 무심코 받다가 “앗 뜨거” 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마다 뜨거움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아니 제가 뜨겁다고 느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것 몇 푼 한다고 그러세요?” 하면서 다소 언성을 높이면서도 이야기 해보았지만 여전히 원칙에 입각한 요지부동의 자세인 그분과 더 이야기 해보았자 소용없겠다 해서 매니저님을 찾았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미소를 띄면서 “고객님 불편한 점 있으세요?”라고 인사하는 매니저님도 아르바이트 직원분과 똑같이 못준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하는 것에서 절망감을 느꼈다.

결국 산책하면서 따듯한 커피를 즐겨보려던 바람은 10여분 이상의 실갱이를 하느라 짜증으로 바뀌었고 이판사판으로 커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으니 그냥 환불해달라고 하니 구매취소는 전혀 실갱이 없이 흔쾌히 해주었다. 참으로 이해 안가는 고객서비스에 갸우뚱하며 매장을 나서려고 하는데 매니저님이 “고객님 지금 이 커피는 기왕 내린 것이니 그냥 가져가서 드시지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공짜로 먹으라는 내용이야 나쁘지는 않은 제안이었지만 내가 그 커피를 가져가지 못했던 이유가 잡기가 뜨거워서였는데 그것을 다시 가져가라고 하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제 돈을 내고도 받을 수 없었던 슬리브를 공짜로 가져가는 커피에 끼워서 주었을까? 정말로 영혼없는 립서비스에 너무나 실망스러워 거절하고 매장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우리 병원에서 대기실 환자분이 데스크 직원에게 다소 격양된 톤으로 컴플레인을 하는 모습이 보였을 때에 커피 매장에서의 그 일이 다시금 떠올랐다. ‘내가 서비스를 받는 위치에 있을 때와 서비스를 제공해야할 상황일 때의 두 가지 다른 입장에서 과연 무엇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하나하나 찬찬히 되돌아 볼 수 있었고 그런 부분에서 내가 치과병원을 운영하면서 환자분 입장에서 어떤 부분을 더 고려해야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져볼 수 있었다.
 
환자를 볼 때에 그 환자분이 느끼는 느낌이나 마음보다는 치아에만 집중한다면, 물론 환자를 괴롭히던 시리고, 아프고, 흔들리던 치아의 증상은 사라질 수 있겠지만, 그 치료 중에 입을 오래 벌리고 있어서, 소리가 거슬려서, 기구가 닿는 촉감이 소름끼치게 느껴지는 등의  환자분의 힘든 상황, 그리고 그런 것을 표현하고 싶은데 의료진이 아무 자리도 마련 해드리지 않아서 말하고 싶은 답답함을 느끼고 계셨던 것은 깨닫지 못할 것 같다는 것, 그리고 병원에서 만든 매뉴얼, 원칙을 너무 획일적으로 적용한다면 커피 매장의 직원분이 내게 했던 ‘환자가 아프다고 하는데 안아프다고 우기는’ 환자고객서비스를 우리병원에서도 모르는 사이에 나 스스로도, 그리고 직원들도 환자분들에게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도록 해준 그 사건(?)에 감사한다. 병원에서도 매뉴얼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방문해주시는 환자분이 느끼는 마음이라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유연성 있는 마인드를 가지고 진료와 상담을 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