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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전상서 II

스펙트럼

매일 일상의 진료 중에 어떤 때는 정말로 여러 가지가 운이 없게도 꼬여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환자분께 발생할 때가 있다. 그런 정황을 너무나도 이해심이 많은 환자분이 그냥 넘어가주시면 좋겠지만 그 환자분도 이미 다른 곳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심기가 불편해진 상태였다면 그 결과는….

어느 날 아침 환자아이의 예약 시간보다 거의 15분쯤 지나서 봐달라고 직원의 호출이 있길래 늦게 왔나보다 하면서 진료실로 갔고 정기검진 아이라서 간단하게 입안을 검진 후 교익사진을 찍도록 했다. 방사선사진에서 이전 내원 시 발견되었지만 진행이 더디기를 바라면서 관찰하던 인접면 우식증이 꽤 진행이 되어서 이번에는 치료를 해야 할 유치가 2개 보였다.

어머님께 “관찰하던 부위가 충치가 더 진행되어서 이번에는 치료 해야하겠으니 설명 들으세요” 하고 자리를 떴는데 잠시 후에 그 치과위생사가 사색이 되어서 오더니 어머님께서 화가 나셨다고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하는 마음으로 가보니 어머님께서는 접수대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신 상태였고 아주 큰 소리로 이런 저런 불만사항을 말씀하셨다.

주위에 다른 대기 환자가족들이 있는 상태였고 어머님 옆에 서서 멍하니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듣다보니 화가 나신 내용들이 거의 모두 공감이 가고 맞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 원장인 내 책임이다” 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대로 어머님은 아이를 데리고 귀가해버리셨고, 마음이 갑갑한 상태로 오전진료를 그럭저럭 마쳤다. 점심시간에 원장실에서 그 상황을 차분하게 되돌아보면서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잘 하는 일일까 기도하며 고민해보다가 결과야 어떻게 되던 후회없이 진정한 마음을 전해드리기로 마음먹고 다음과 같은 장문의 문자를 어머님께 보내드렸다.

“어머님, 정말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로 죄송합니다. 여러 가지에서 저와 직원들 사이의 호흡이 맞지 않아서 이런 상황이 생겼습니다. 지금부터의 내용들 모두 구차한 변명임에 분명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진심을 다해서 어머님께 전해드리려 합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그렇게 하고 계시듯이 저는 20년이 넘게 병원을 운영하면서 아이들과 보호자분들께서 내원하시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평소에 직원들과 저희 진료부는 아이들의 구강건강을 돌보아줌으로써 가족모두의 행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모인 팀(team)이고, 환자(보호자)가 병원에 내원해서 가능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원하는 것을 만족스럽게 얻은 후에 귀가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고 시행하자 라고 의기투합 하면서 하루하루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너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게 되니 당황스럽긴 하지만 이에 반성하면서 더욱 노력하는 기회로 삼아보려고 합니다.

오늘 어머님께서 아침 이른 시간에 어린 두 딸을 깨워서 오시는 것만 해도 힘드셨을 텐데 대기시간과 성의 없어 보이는 원장의 응대, 그리고 전문적이지 못해 보이는 직원의 모습 등 모든 것이 화가 나실만한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아이가 어려서 되도록 치료 시기를 늦추어서 해보려고 관찰 중 이었는데 이제는 꼭 치료를 해야할 정도로 진행되었으니 저희 병원이 아니라도 꼭  늦지 않게 치료받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노여움 풀리신다면 다시 방문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그날 오후 느즈막하게 이렇게 어머님의 답 문자가 왔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외출 중이어서 이제서야 문자드립니다.

아침엔 정말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시간 맞춰 가려고 밥도 대충먹이고 불법유턴까지 하며 고속으로 달려간 건 제 사정이지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선생님의 진료를 받으려 했던 건데, 오랜 대기시간은 둘째 치고 간호사분을 통해서 선생님 설명을 전달받아야 했을 땐 도저히 용납이 안됐습니다.

저도 사정이 있지만 당연히 선생님도 사정이 있으셨겠지요. 오랜 세월 이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도 크실 텐데 제가 마인드컨트롤을 못하고 모두 앞에서 그렇게 소란을 피운 건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차라리 그냥 가게 두시고 후에 전화나 한통 주셨으면 제 맘도 이리 불편하진 않았을텐데요….

구관이 명관이지요, 그리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좋아해요. 면목 없지만 다시 진료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쌈닭처럼 굴긴 했어도 블랙리스트에 올리진 말아주세요.

고맙습니다. 다른 치과 검색하느라 들일 시간을 벌어주셨어요, 조만간 뵙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무거웠던 오전에서 행복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밤을 맞을 수 있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