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에서 어린 아이들을 위한 치과진료공간을 마련한지도 벌써 20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많은 환자 아이들이 다녀갔고 여러 가지 이유로 진료를 할 때 이후에도 기억이 남아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의 연락이 지속적으로 닿는 때도 있다.
때로는 심한 complaint을 받고 낙심하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아이의 조막만한 손으로 선생님 드시라고 건네주는 과자 한 조각에 마음이 뿌듯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한 시간들이 어우러져서 하루가, 1년이 지나다 보니 어언 20년인가 보다!
정기검진을 할 때 간단하게 진료실에서 육안으로 검진해주고 필요한 방사선사진을 찍은 후에 그 결과를 상담실에서 알려드릴 때가 있다. 시간이 여유있거나 진료실이 여유가 없을 때에 무심코 하는 과정인데, 얼마 전에 어떤 보호자분에게 상담실로 들어오시라고 하고 촬영한 방사선사진에서 특별히 우식증이나 그 밖의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을 드리고나니 어쩐지 잔뜩 긴장했던 얼굴이 그제서야 풀어지시면서 “상담실로 들어오라고 하셔서 큰 병이 발견된줄 알고 많이 긴장했어요”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반대의 경우를 우리 치과의사들도 느낄 때가 있다. 어느 날 직원이 “원장님 상의드릴 것이 있습니다”라고 하면 가슴이 덜컥 하면서 나한테 평소에 불만이 있나? 병원을 그만두려고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직원이 본론을 꺼내기 전까지 머릿속에 갖은 상상을 하게 된다. 환자 보호자가 면담 요청을 하시는 경우도 있다. 이 때에도 대부분은 뭔가 병원에 진료관련해서 걱정되거나 건의할 사항을 전달하려는 나름 그분으로서는 큰맘 먹고 말씀하시는 것이려니 하면서 근심스러운 마음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날 여자 중학생의 어머님께서 데스크 직원을 통해서 면담요청을 하셨다. “원장님 OOO어머님께서 진료 전에 원장님께 부탁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어머님께서 먼저 자리하고 계신 상담실로 들어갈 때에 내 머릿속에는 그 아이 진료 관련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면서 그 중에서 어떤 것을 어머님께서 언급하려 하시는 것일까? 하고 걱정섞인 추측을 하였다. 그런데 정작 부탁하시려는 내용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다. “저희 딸이 장래 희망을 치과의사로 정했습니다. 바쁘실테지만 아이가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선생님께서 조언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잠시 후에 행복한 생각이 밀려 들어왔다. 그 결정의 배경에는 오랫동안 우리 병원에서 치료와 검진을 받아오면서 너무나 좋게 느껴졌었다는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를 직업적인 멘토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전달받고 해주려면 제대로 해야겠다 라고 결심하고 그날 진료 후에 10분정도 아이와 면담(?) 시간을 가진 후에, 아이의 메일주소를 받고 나의 메일주소와 핸드폰번호도 알려준 후에 메일로 조언 해 줄 내용을 먼저 보내줄테니 읽어보고 앞으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메일이나 카톡 등으로 물어보라고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메일을 보내주었다.
“선생님의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솔직히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갖겠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진로지도 등의 교육을 학교에서 해주는 때가 아니었어요. 그냥 막연히 과학자가 되겠다,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등등의 생각을 하는 정도였지요. 그래서 이런 어린 나이에 벌써 장래에 대한 목표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 참으로 부럽고 대견하게 생각해요.(중략)
저는 치과대학시절도 즐거웠고, 치과의사가 된 이후 병원에서 환자를 보는 일, 대학에서 외래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각종 학회 등에서 강연(발표)을 하는 일 등 일상의 일들을 재미있고 보람 있게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으니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에요. 이제 치과의사가 된 지 25년,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까지 일해 왔던 기간정도는 더 활동하는 것이고 지금도 틈틈이 하고 있지만 은퇴한 뒤에는 더욱 의료봉사를 하고 싶어요.(중략)
치과의사가 되기 위한 능력과 자질이 있을지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은 없지만 굳이 조언한다면 제가 생각하는 것을 간단하게 알려드릴게요.
치과의사로서 지내는데 꼭 필요한 것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능력(성격)이라고 생각해요. 보통은 치과의사 하면 찝개로 이를 빼고 충치를 때우고 하는 그런 의료행위 만을 떠올리는데 그런 행위를 하기 전, 후에 이루어지는 필수과정이 상담과 설명이거든요. 어떤 치료 전에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지식적인 부분은 기본적으로 중요한데 그런 능력은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사람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여부는 어릴 때에 정해질 수 있어서, 성인이 된 후에 바꾸려면 정말로 뼈깎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므로 학생 때에 많은 책도 읽고 이에 대해서 의식하면서 지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와 더불어서 다른 직업들과 마찬가지로, 또는 더욱 높은 도덕, 윤리의식적인 부분은 꼭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 자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른 사람까지도 생각해주어서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로 좋은 치과의사가 될 수 있을거에요.”
며칠 후에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다.
‘선생님~ 저 000 이에요~:)
바쁘신데 제가 부탁드렸을 때 도와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선생님께서 답변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선생님께서 언제부터 제 멘토셨나고 물어주셨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대답을 못했어요. 선생님께서는 제가 5살 때부터 멘토셨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중학교에 오니까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조금 힘들긴 하지만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제 꿈에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요! 아자아자!
다음에 뵙겠습니다. 감사해욤.’
아이의 메일을 읽으면서 소아청소년 치과를 전공한 것에 대한 뿌듯함과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도 기쁜 마음이 샘솟아서 주체할 수 없이 행복한 하루가 되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