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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1번째 이야기
충치에서 우주까지 제35부

원 제 : From the Cavity to the Cosmos 부 제 : 천국과지옥 63세 미스터 ‘왕 트집’씨의 내원은 보통 점심시간 직후다. 간호원과 원장이 조금 쉬고 긴장이 해이해진 진료시작 30분 이내를 거의 놓치지 않는다. 오자마자 ‘왕’씨는 접수구에 일단 무게 있는 으름장(?)을 몇번 놓는다. 그렇다고 순서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신참 김양은 은근히 주눅들려 환자를 진료실로 모신다. 덩달아 언짢아진 원장은 신경질적인 표정을 못내 숨기며 물어본다. “어디가 갑자기 불편하십니까?” “허어, 이거 불편정도가 아니라 큰일났소! 큰일....” 얼른 보니 만 1년밖에 안된 상악 측절치의 도자기 금관이 모가지 채로 뚝 부러졌다. 금관속에는 잇머리를 보강하기 위해 뿌리에서 박아 올린 굵은 포스트도 같이 나뒹군다. 낭패다. 환자 말 그대로 큰일이다. “혹시 단단한 걸 우지끈 씹었던 적이....?” 있음직한 병력을 물어보는 원장. “아침에 일어나서 물 마시는 데....” 환자. “물 마시는 데?” “슬렁슬쩍 이가 따라나옵디다." 좀 이상하지만 원장 손바닥에 든 파절편은 환자의 불만스런 얼굴만큼이나 명백하다. 대기실환자는 계속 밀리고 실랑이할 시간이 없는 원장은 환자에게 A/S를 약속, 좋게 돌려보낸다. 40대초의 ‘박 점잔’씨가 치료받기 위해 치과에 오면 꼭 동행하는 식구가 있다. 바로 아주머니와 그들 부부의 딸 ‘얌전’이다. ‘얌전’이는 대기실과 진료실을 이따금씩 왔다갔다한다(이는 치과에서 또래의 다른 애들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일이다.) 아주머니는 기다리는 동안 너무도 조용하다. 대기실에서 남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고집스레 잡지만 본다. 왜냐면 귀가 전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강약이 조절 안되는 외마디 소리만 조금 낼 수 있다 뿐이지 심한 청각장애는 치료받는 ‘점잔’씨도 꼭 같다. 원장이 딸 ‘얌전’이를 호출하면 아주머니는 ‘얌전’이의 사인(?)을 보고 얼른 진료실에 들어온다. 원장은 치료비 액수라든지 이를 해 넣는 방식 등을 ‘얌전’이에게 먼저 설명한다. 초등 2년생인 이 부부의 딸은 빠른 속도로 부모에게 그 내용을 수화로 전한다. 부모들은 그윽한 눈길로 딸의 얘기를 듣고(보고?) 서로 협의한 다음 다시 딸을 통해 그 결정을 원장에게 전한다. 이렇게 하면 전체 진료시간이 많을 것 같으나 우왕좌왕하고 번복을 좋아하는 정상인들에 비해 채 반도 걸리지 않는다. 수화는 세밀한 표현까지도 치밀하고 빠르게 전달되는데다가 오래된 이 장애자 부부는 그것도 거의 필요 없이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단계다. 오후에 겨우 한가한 틈이 생긴 원장은 ‘왕 트집’씨의 초진시 방사선 필름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뭔가 석연치 않다. 문제가 됐던 것은 2번 치아고 원장이 최근에 치료했던 것은 그 바로 옆의 상악 좌측 3번이다. 오전 내원시의 필름은 흉물스레 목부러진 2번 치아 옆에 3번이 늠름히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일년전의 기록에 치료부위도 역시 일치한다. 무엇보다도 2번의 부러진 포스트는 개업 십여년 이래 원장이 써 본적도 없는 모양의 제품이다. 그리고 원장이 늦게 안 사실이지만 부러진 치아파절편은 단면이 몹시 낡은 채 충치가 깊숙이 들어와 있어 언제라도 큰일 나게 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주 드문 경우인데 치료받은 두 치아의 모양과 크기가 매우 비슷해서 생긴 원장의 진단착오다. 원장은 자신의 것이라고 잘못 시인했고 환자는 그리 알고 벌써 집에 간지 오래다. 더욱 낭패다. 원장은 조심스레 전화를 건다. "바빠서 제가 조금 잘못 보았던 게.... 부러진 것은 최근의 것이 아니고.... 타 치과에서 제작했던 거고.... 아마 오래된 것이 틀림없을.... 죄송한 얘기나..., 제 작품은 지금도.... 입안에.... 그리고 잘 기능하고 있.... " 이쯤 설명하면 이해를 해주지 않을까 혹시나 기대했는데 역시나다. 펄펄 뛰며 자신의 기억이 틀림없다고 우겨대는 환자의 말은 이미 대화의 수준이 아니다. 다음날 씨근거리며 환자가 내원했다. 원장이 과거 진료기록과 방사선 사진을 차근차근 보여주며 애써 설명한다. “이게 이거고 , 저게 저거고....(?)” 원장, 주섬주섬. “눈도 나쁜 내가 그게 어찌 보이나?” 노환자, 노발대발. 원장이 진료기록을 가리킨다. “이건 원장 맘대로 쓴 거지 어찌 내거란 말이오!” “기록도, 치료 전후의 필름도 지금 본인의 것입니다. 부러진 이는 분명 우리 치과에서 만든 건 아닙니다만 다시 하시겠다면 잘 해드리겠습니다.” “흥 ! 비싸게 받고 책임지기 싫으니까 괜히 그러는 거지 ? 다 물어내란 말이야!” 자리에서 홱 일어서는 ‘왕’씨의 마지막 말이다. 되려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돼버렸다. 끝까지 좋은 결과를 얻어보려던 원장은 몹시 입맛이 쓰다. “얌전아! 엄마 들어오시라고 해라” 원장의 자신 있는 목소리. “예에.” 밝은 ‘얌전’이의 대답. 오늘은